하정우와 공효진이 작품을 함께한 건 처음인데, 왠지 둘의 조합이 너무 익숙해서 기시감마저 느껴질 참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주변에서 비슷한 말을 자주 듣기도 했다. 이제껏 함께 한 작업이라곤 맥주 CF 두 편과, 영화제나 시상식의 동반 입장뿐인데 말이다.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긴 했지만 함께 영화를 찍기 전에는 “둘 다 A형이라” 낯가리기 바쁜 사이였단다.
하정우와 공효진이 보기 좋은 하나의 세트처럼 보인다면, 아마 '러브픽션'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완벽하게 재정의된 덕분일 것이다. 이 영화는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찬 남자의 연애담이다. 처음에는 온갖 것이 다 예뻐 보이던 애인의 행동이 한순간에 짜증나는 행동거지로 변모할 때 남자들의 속마음이 속속 파헤쳐진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문법에 지루함을 느끼던 두 배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찌질하고, 적나라하고, 웃기는 연애 속으로 뛰어들었다.
현장에서 사소한 것까지 다정하고 살뜰하게 챙기는 태도부터, 사람 좋아하고 즐거운 일 도모하기 좋아하는 공통 성향은 하정우와 공효진을 단순한 상대 배우가 아닌 영화적 동지이자 ‘절친’ 사이로 엮어놓았다. 두 배우는 작년 말 국토대장정 팀을 꾸려 서울에서 해남까지 20일 동안 함께 걷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방울방울하다’는 건, '러브픽션'의 주월과 희진이 주고받는 특별한 애정 표현이다. 인생과 커리어의 고민을 허물없이 나누고, 서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언제든 기꺼이 동참할 의지가 충만한 하정우와 공효진의 사이 역시 방울방울해졌다.
-두 사람은 ‘배우가 선호하는 배우’ 아닌가. 촬영 전 상대 배우에게 뭘 기대했나?
하정우 글쎄, 난 또래 여배우들하고 호흡을 맞출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내게 연기 앙상블보다 중요한 건 상대 배우를 신뢰하고, 정을 쌓고, 그 배우를 ‘사람’처럼 여기는 일이거든. 효진이는 단순히 상대 배우라는 느낌보다 동료라는 느낌을 더 많이 주는 사람이다. 소통이 아주, 그야말로 기대 이상으로 충만했다.
공효진 맥주 CF를 함께 찍으면서 오빠가 너무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현장이 재미없거나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또 하나 기대했던 건, ‘저 야생 동물과 내가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하는 점?
하정우 ‘이렇게 연애하면 난리 나겠다’는 걸 배웠지. 내가 연기했지만, 구주월은 참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만 골라서 하거든. 전계수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는데, 전혀 여과 없이 솔직한 이야기라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고 폭발력 있는 코미디도 기대되고. 대사나 상황이 너무 솔직해서 거북할 수도 있으려나?
-글쎄. 일단 ‘겨드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가 처음인 건 확실하다.
공효진 사실 겨드랑이 보여주는 장면은 딱 두 번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처럼 털이 수북하게 붙어 있는 그런 모양새는 아니다. 그런 식으로 코미디를 몰아가는 영화라면 출연 안 했지.
하정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효진이는 진짜 사랑스럽다. 나는 비호감 캐릭터고. 미녀를 돋보이게 하는 야수 역할이다.
-하정우는 여배우와 있으면 동생 같은 느낌이 짙고, 공효진은 남자 배우와 있을 때 누나 같은 느낌이 짙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네.
공효진 내가 원숭이 띠고 오빠가 말 띠다. 말 등에 탄 원숭이가 잘 까부는 거지.(웃음)
하정우 영화에서는 그냥 미녀와 야수라니까. 나는 막 덩치만 커가지고 조금 전까지 뱃일 하다가 온 사람 같다. 효진이가 가냘픈 몸으로 예쁘게 붙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
공효진 연애할 땐 여자가 좀 더 성숙하다잖아. 그래서 내가 연기한 희진이 주월보다 누나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주월이 워낙 찌질하고 미운 짓만 골라 하지만, 희진이 주월을 가르치려고 드는 건 없다. 장점은 살려주고, 부족한 면은 참아주려고 했는데 막판에 확!
하정우 그건 스포일러 아니야?
공효진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들이 다 만났다 헤어졌다 그러는 거지, 그게 뭐 스포일러야.
-공효진은 거의 ‘하정우 컨트롤 전문가’ 느낌인데?
공효진 실제로 촬영 시작하자마자 ‘하정우 연구’에 돌입했다. 사실 관객이 이 영화에 기대하는 가장 큰 지점은 우리 둘의 시너지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우리가 만나면 어떤 모습일지 파악하려면, 상대를 알아야 한다. 오빠는 왜 그렇게 얘기해요? 왜 그런 행동을 해요? 그렇게 물어보면서 은근슬쩍 지적하고, 강요하고.(웃음) 오빠가 참 재미있는 연구 대상이더라고. 오빠의 매력이 이거구나, 단점은 이거구나, 이 점만 바꾸면 사랑받겠구나, 반면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구나 하는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지셔닝은 끝까지 어려웠다.
-포지셔닝?
공효진 여자들은 나이 차와 상관없이 주변 남자들의 포지션을 정해놓지 않나? 이 사람은 오빠, 저 사람은 친구, 저 사람은 동생. 오빠는 끝까지 애매했다. 남자? 친구? 동생? 규정지을 수 없는 사람이라 더 재미있더라. 국토대장정을 함께 하면서는 오빠의 포지션이 확실해졌지. 확실히 친구가 아니라, 오빠 같은 느낌이다.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싶고, 좋은 영향을 받고 싶다.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고. 하정우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