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난 명동에 거의 붙어있는 서울예대를 다녔다. 다른 어느 대학도 부럽지 않았던 것이 수업이 끝나거나 중간에 시간이 비면 명동을 싸돌아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시내하면 명동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
사리·밥을 추가 요금 없이 계속 주는 그 유명한 칼국수 집에서 직원들이 걱정할 만큼 추가를 먹던 일. 좁은 골목에 가면 부산식인지 뭔지는 몰라도 조방낙지라 하는 낙지에 밥 볶아 먹는 재미. 나름 정통의 나이트 마이하우스에서 저렴하게 놀기도 했다. 유명 미용실은 모두 명동에 본점이 있어야만 했다. 나름 정장을 어릴 때부터 좋아한 나는 빌리지·EXIT·포스트카드에서 아주 멋진 날라리 옷을 입었다. 명동은 참 많은 경양식 집과 커피숍이 있었으며 그것은 지금의 대기업 운영의 거기서 거기 커피숍과는 다른 각각의 색깔이 있는 곳이었다.
한동안 압구정동이 뜨며 한걸음 뒤로 물러선 느낌의 명동. 유명 패션 브랜드와 미용실이 모두 청담동으로 옮겨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국가 경제 관련 뉴스나 연말연시 풍경은 역시 명동을 배경으로 나갔다.
나는 명동을 참 좋아한다. 북적이고 생동감 있는 그 분위기와 무엇이건 다할 수 있다고 마음먹던 시절의 그 느낌이 참 좋아서다. 그런 멋진 명동이 지금 다시 꿈틀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명동은 좀 어수선했다. 일본인 밖에 없던 곳에 중국인들이 몰리면서 각 상점마다 우리말·일본어·중국어로 호객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육성이 아닌 스피커를 사용해서 말이다. 특히 화장품 관련 가게는 지나칠 만큼의 손님 팔 끌어당기기를 했다. 활기찬 느낌의 상권이 아닌 불쾌함을 느끼는 단계까지 간 것이다.
이에 얼마 전 호객행위에 대한 자치구와 경찰의 합동 단속이 있었다. 참 놀랍게도 단속 시작 후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줄어들었다. 어찌 보면 옆 가게 한 군데서 시작하니 덩달아 하게 되고 그에 질세라 나머지가 모두 동참한 꼴인 것이다.
지나친 호객행위는 결국 사람들의 발길을 끊게 만든다. 과거 월미도 횟집들·연안부두·신사동 아구찜 거리·방배동 카페 골목 등이 그런 전철을 밟았다. 물론 지금은 상인들의 자제 노력에 다시 사랑 받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명동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돈 벌고 사는 사람을 말리면 되겠나. 단, 크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세계 속의 명동이 되어야 한다. 리어카 판매대도 깔끔 단정하게 운영되도록 자치구의 관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모습은 얼마나 기백 넘치는 모습인가. 전 세계인이 오는 곳에서 당당하게 명품 짝퉁을 팔고, ‘불신지옥’을 겁나 큰 스피커로 외치며 교회 집사·권사이신 울 부모님도 인상 쓰게 만들고, 믿을까 고민하던 청소년마저도 떠나게 만드는 ‘난 전도해 천국 갈래’ 님이 우렁차게 자유로이 계시는 명동. 앞으로 1년 뒷면 한글 간판보다는 일본어와 중국식 한자어가 더 많아져서 그들이 ‘어? 내가 외국 여행 온 거 맞아?’하는 배려를 마련해 주는 곳 명동.
명동을 사랑하고 추억하는 자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의 명동은 외국인의 눈에는 더 이상하게 엉킨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생동감과 멋쟁이들이 넘치는 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