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희(56) 광주 FC 감독은 박사 출신이다. 1998년 전북 감독 시절 낮에는 선수들과 훈련하고 밤에는 중앙대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공부하는 감독'이라는 별명도 있다. 지금까지 축구에 대한 연구를 쉰 적이 없다.
최 감독은 올 시즌부터 발표 자료를 꾸밀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파워포인트(PPT)를 활용해 선수들과 소통하고 있다.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 자료를 만드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 1일 열린 강원 FC와 경기를 앞두고는 지난 2월 별세한 고 강영우 박사 이야기를 PPT로 꾸며 선수들에게 들려줬다. 강 박사는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국계 최초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인물이다.
최 감독은 "강 박사가 14세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한 것에 아이디어를 얻었다. 선수들이 '환경 때문에 내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이 이야기를 준비했다"고 했다. 이어 "광주라는 팀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숙소도 열악하고 제대로 된 훈련 구장도 없다. 선수들이 열악한 현실에 실망할까봐 강 박사의 일대기를 들려줬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이 준비하는 PPT 자료는 소재가 다양하다. 최근에 이슈가 됐던 인물이나 사건을 소개한다. 겨울 전지훈련 때에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고 스티브 잡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PPT 활용은 경기 전날 쏠쏠하게 활용된다. 선수들과 미팅 자리에는 어김없이 PPT 자료가 등장한다. 다음날 선발과 후보 선수 명단을 PPT 효과를 이용해 재밌게 표현한다. 마우스를 누를 때마다 선수 한 명씩 화면에 나타나 자신의 포지션에 얼굴이 위치한다. 슈바의 얼굴을 외계인처럼 합성을 해 선수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오른쪽에서 날아오기', '아래서 올라오기' 등 다양한 효과는 필수다.
최 감독이 PPT까지 배워가면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광주가 '젊은팀'이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친구들은 즐겁지 않으면 잘 듣지 않는다. PPT를 준비하는 것도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다"고 했다.
광주는 강원전에서 1-1로 비겨 개막 후 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3승 2무로 단독 2위다. 창단 2년째인 시민구단의 성적이라고 믿기 힘들다. 최 감독은 강원전이 끝난 뒤 "이번 주는 어떤 PPT 자료에 어떤 효과를 넣어야할지 고민해봐야겠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