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26·KIA)이 '폭로'하는 SK 오른손 투수 윤희상(27)의 어린시절이다. 윤희상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석민이 말이 맞아요. 마음대로 안되면 고집을 피우다 결국 울었죠." 초등학교 재학 중에 구리 리틀야구단에서 윤희상과 함께 함께 야구를 시작한 윤석민은 "참 착했어요, 마음도 여리고. 그래서 자주 울었는지도 모르죠"라고 설명을 더했다. 여리고 착해서였을까. 윤희상의 프로생활은 참 힘겨웠다.
그러나 2012년 윤희상은 "최근에는 아침에 눈 뜨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빨래도 내가 안 하고, 늦잠도 자고요." 단순한 이유. 하지만 '상징적'이다. 윤희상은 올 시즌 'SK의 에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2004년에 입단해 프로 8년째인 2011년에야 겨우 1군 첫승을 거둔 투수. 올해에는 두 경기(8일 문학 KIA전·14일 문학 한화전)에서 벌써 2승을 챙겼다. 13이닝을 던지는 동안 8개의 안타를 내줬고 실점은 하나도 없었다.
"이종범 선배와 TV 출연도 했었죠."
윤희상은 구리초교 5학년이던 1996년 '구리 리틀야구단'에 입단하며 야구를 시작했다. 출발은 내야수. 윤희상은 "수비를 괜찮게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증거 자료'가 화면으로 남았다. 윤희상은 97년 한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진행한 '제2의 이종범을 찾아라'라는 방송에 출연했다. 재능 있는 '어린 내야수'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당시 대스타였던 이종범 선배님의 손도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소년' 윤희상은 '던지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 선린인터넷고에 진학하면서 투수에 전념했고, 2004년 신인지명회의에서 2차 1라운드(전체 3번)로 SK에 지명됐다. 당시 스카우트였던 진상봉 SK 운영팀장은 "키가 크고 유연했다. 성장 가능성이 크게 보였다"고 떠올렸다. SK는 윤희상에게 계약금 2억원을 안겼다. 기대치는 그만큼 높았다.
"'쟤는 저래서 안된다'고…. 마음 아팠죠."
프로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윤희상은 "뭔가 하려고 하면 아프고, 기회가 오면 못 잡고. '안 풀리는 선수'가 다 그렇지 않나"라고 입단 초기를 떠올렸다. 윤희상은 자주 어깨가 아팠다. 2004년 11경기, 2005년 3경기에만 구원투수로 등판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군과 2군에서 보냈다.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무책임한 악성 댓글이었다. "제게 기대가 커서 그러셨겠지. 그런데 나뿐 아니라, 내 가족과 나를 스카우트한 분들까지 비난하시더라.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면서도 댓글을 읽었다. 솔직히 상처를 많이 받았다."
윤희상은 2006년 7월 오른 어깨 수술을 받았다. 2007~2008년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이 기간 "타자로 전향해 볼까"라는 고민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맞으러 올라가는 거니까요."
수술 뒤에도 윤희상은 "아플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2009년과 2010년을 또 2군 선수로 보냈다. 2010년 마무리캠프. 김성근 당시 SK 감독은 "아픈 것을 두려워해서 던지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있는가. 안 아프면서 던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윤희상은 "아직도 기억하는 말씀이다"라고 회상했다. 이후 윤희상은 한·미·일 투수들의 '투구 동영상'을 찾아보고 응용했다. 점점 자신에게 어울리는 투구 동작을 찾아갔다. 이만수 당시 2군 감독은 "희상아, 자신있게 던져. 내가 책임질게"라고 그를 독려했다. 던지는 게 다시 재미있어졌다.
지난해 후반기 3승을 거둔 윤희상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2012년에는 당당히 팀의 두 번째 선발로 시즌을 맞이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연마한 포크볼은 리그 정상급 구종으로 올라섰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0㎞까지 나왔다. 그리고 투심·포심패스트볼보다 강력한 '입심'도 생겼다. 윤희상은 "맞으러 올라가는 거 아닌가요. 이제 마운드에 서는 게 두렵지 않아요"라고 했다.
TIP='명문' 구리 인창 리틀야구단
윤희상(27·SK)은 '구리 인창 리틀야구단 창단'을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으로 꼽는다. 그는 인창 리틀야구단의 창단(1996년) 멤버다. 하지만 윤희상은 "더 유명한 선수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투수 4관왕(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승률)에 오른 KIA 에이스 윤석민(26). 윤희상은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함께 창단 멤버가 됐다"고 했다. 두산 내야수 윤석민(27)도 인창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윤희상과 두 명의 윤석민은 아직까지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절친한 사이다. 윤희상은 "(KIA) 석민이가 11일 (광주 삼성전) 던지는 것을 봤다. 정말 대단하더라. 내가 먼저 승을 따냈지만, 역시 석민이가 한 수 위다. 다음 번에는 승리도 따내라. 두산 석민이도 올해에는 경기에 많이 나오더라. 홈런을 쳐라"라고 친구와 후배를 격려했다. 최근 또 한 명의 '인창 리틀야구단이 배출한 스타'가 나왔다. 넥센의 오재일(26)이다. 윤희상은 "재일이가 드디어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정말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