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가 길어지면서 남친의 주사가 시작됐다. 아무렇게나 여자의 몸을 만지고 얼굴에 침을 묻히며 술취한 키스를 해댄다. 여자는 공식적인 여친이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떤 행위도 용납된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남친은 나보란 듯이 무례를 범한다. 여자는 남친의 머리가 올려진 어깨를 좀더 힘없이 늘어뜨리고 고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곁에 앉아있던 M이 미간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앞에 놓인 술잔을 한숨이 들이킨다.
‘그만 두지 못해 이 자식아!’
내 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여자들은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혹은 그렇게 비춰지는 것으로 앙큼한 유혹을 하기도 한다. 공식 여친이 생겨서 품절남이 되는 것과 버금가는 품절녀의 숨길 수 없는 아픔도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매력적인 여자이고 싶은 단순한 욕구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나 있는 나쁜 여자 본능임을 숨길 수 없다. M이 위로의 눈빛을 보내왔다. 남친은 점점 더 술기운에 정신을 잃고 있을 때쯤 여자가 M의 술잔을 받아 들었다. ‘네가 이 녀석을 만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M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술을 들이킨다.
여자는 갇혀있던 창살을 뚫고 나온 듯이 M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건 이미 두 사람이 술집 옆골목으로 달려나와 아무도 없는 어둠속에서 여자가 남자의 따뜻한 손길을 만끽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여자는 틈틈이 M을 뿌리쳤고, 이러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M도 자신이 술에 많이 취해 이성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일탈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두 사람은 공조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M은 여전히 여자를 먼 발치에서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인양 눈길을 보낼 것이고, 여자도 종종 M에게 유혹의 몸짓을 보내며 비밀을 지켜갈지도 모른다.
그럴싸한 외도의 핑계거리다. 사랑의 감시자로서 내 남자에게 연적을 만들어 주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해보았다. 가끔씩 내 남자의 쇼셜홈피에 댓글을 남기고 가는 여인들을 보고 움찔했지만 초연하려고 애써 본적이 있다면 이 논리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매력에 대해 대변해줄 수 있는 비밀아군을 심는 거다.
여자는 M과 비밀을 지켜가던 중 자신이 아끼던 후배를 소개시켜줬다. M은 미혼이었고 여자가 소개시켜준 후배와 맺어지도록 적극 후원했다. 혼란스러운 사랑의 작대기 상황이 벌어졌지만, 의외로 관계는 별탈 없이 유지되었고, M은 여자의 후배와 결혼에 골인까지 했다. 이런 종류의 몹쓸 막장 드라마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단지 M과 여자가 육체적 관계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해놓은 것 덕분에 두 커플의 결혼생활은 모범적으로 보였다.
여자를 만났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마지노선은 지키고 있느냐 물었다. 여자는 M이 다른 도시로 떠났지만 여전히 서로의 소울 메이트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건 작은 배터리 충전 정도의 의미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왜 너 자신은 방전시켜놓고 예전처럼 사랑이 불타오르지 않느냐고 불만만 하고 있느냐고.
최수진은?
불문학 전공, 전직 방송작가, '야한 요리 맛있는 수다' 의 저자. 성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