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력을 지닌 박찬호(39·한국)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신인이다.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양훈(26)에게도 배울 준비가 돼 있다. 그보다 더 어린 포수 정범호(25), 내야수 하주석(18)과도 선수 대 선수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전설이자 신인인 박찬호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다.
18일 대전구장에서 박찬호를 만났다. 전날 잠실 두산전에서 시즌 2승째를 따낸 그는 "정범모와 하주석이 '잘 부탁한다'고 하더니 경기에 돌입하니까 코치와 감독 역할까지 하더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양훈이 던진 것을 보고 여러가지를 배웠다"고 말할 때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하나마쓰 고지 한화 컨디셔닝 코치는 "박찬호는 스스로 트레이닝 훈련을 한다. 중요성을 체득한 것 같다. 젊은 투수들이 배워야할 부분이다"라고 했다. 한화가 기대하는 '박찬호 효과'다.
-17일 두산전에서 7이닝(1실점)을 소화하며 시즌 2승째를 따냈다.
"팀에 연승 분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강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연승이 필요하다. 내가 등판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어 기뻤다. 투구수 100개 정도(94개)로 7이닝을 소화한 것도 의미가 있다. 3회말 임재철에게 내야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 투심을 던졌는데, 그게 병살타로 연결됐다. 5회에는 오재원을 견제로 잡았다. 이렇게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고, 투구수를 줄일 수 있었다. 사실 (16일 선발 등판한) 양훈에게 배운 덕이다."
-무엇을 배웠나.
"양훈이 전날 호투(7⅓이닝 2실점)하지 않았나. 내 공이 상대 타자들에게 쉽게 보일까봐 겁이 났다.(웃음) 양훈을 보면서 공격적인 피칭과 로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양훈이 효과적으로 커브를 쓰더라.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서 마운드에 올라갔다."
-젊은 포수(정범모)와 호흡을 맞췄다. 신인 내야수 하주석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던데.
"하주석은 자꾸 '이렇게 해보자'고 하더라. 범모는 처음에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코치와 감독'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선수들끼리 대화가 많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시도를 하고, 실패도 해보고. 이렇게 경험을 쌓으면서 강해진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대선수 옆에 선수들이 모여 이야기를 듣는다. 선발 투수들끼리는 볼 배합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17일 경기에서 더 던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늘 더 던지고 싶다. 그러나 정민철 투수코치가 '그만 던져라. 이제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다'라고 하더라. 당연히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국내 구장 중 가장 큰 잠실에서 던졌다. 청주에서와는 다른 볼배합을 했나.
"기본적인 원칙이나 생각이 있지만 구장별로 변화를 주긴 한다. 청주에서는 낮게 던지려고 노력했고, 투심보다는 포심을 택했다. 그러나 어떤 공을 던져도 실투가 나오면 홈런을 맞더라. 타자의 타이밍을 어떻게 빼앗고, 어떤 로케이션으로 던지느냐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
-하나마쓰 코치는 "가장 열심히 트레이닝 하는 선수"로 꼽았다.
"슬슬 배가 나오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렇다.(웃음) 나는 열심히 하지만 다른 젊은 선수들은 자신에게 적당한 양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한 시간씩 뛰었는데 부상이 올까봐 대신 자전거를 탄다. 이렇게 맞춰가는 게 트레이닝이다."
-등판하는 경기마다 매진이다.
"어제 잠실에서 던졌는데 큰 구장이 관중들로 꽉 차 있으니 정말 좋더라. 팬들 때문에 한국야구에 돌아오고 싶었고 돌아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팬들에 의해 (KBO) 이사회와 각 구단들의 동의를 얻어 지금 이렇게 뛸 수 있게 됐다. 팬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주니 흥행도 되고 한국야구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 정말 감사드린다."
한대화(한화 감독)="박찬호가 길게 던져주니 팀에 큰 도움이 된다. 힘을 안배하는 방법을 알고 던졌다.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뒤 한국 프로야구에 적응한 것 같다. 사실 어제(17일 잠실 두산전)는 더 길게 던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리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에 교체를 지시했다. 박찬호가 7이닝 정도만 소화해줘도 얼마나 마운드 운용이 수월해지겠나."
정범모(한화 포수)="캠프 때 박찬호 선배의 공을 많이 받아봤다. 색다르진 않았다. 그러나 이겨야 하는 경기라 부담은 있었다. 박찬호 선배께서 '포구 좋다'고 칭찬해주셔서 마음 편하게 경기를 했다. 조금 다른 부분은 있다. 다른 투수들과 호흡할 때는 주로 내가 볼 배합을 결정한다. 그러나 어제(17일)는 박찬호 선배께서 더 많이 리드하셨다. 내가 사인을 내면 선배가 고개를 흔들고, 마음에 드는 사인을 낼 때까지 기다리셨다. 역시 경험이 많으셔서 박찬호 선배의 생각이 대부분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