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만식(38)은 남다른 존재감을 뿜어내는 배우다. 강렬한 인상과 걸걸한 입담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가하면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웃음으로 서민적인 느낌을 표현하기도 한다. 악역에서 코믹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최근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연기파 배우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공개된 출연작만 해도 영화 '모비딕' '카운트다운' '특수본' '시체가 돌아왔다' '은교', 드라마 '최고의 사랑' '나도, 꽃!'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연극무대에 발을 들여놓은지 19년, '오로라 공주'로 영화계에 진입한지 7년이나 된 베테랑 배우가 재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4일 종영한 MBC '더킹 투하츠'에서는 북한장교 리강석 역을 맡아 하지원·이승기와 연기호흡을 맞추며 주목받았다. MBC '주병진 토크 콘서트'에서 보여준 입담도 화제를 모았다.
-'더킹'에서의 이북 사투리 연기는 어렵지 않았나.
"2008년 연극 '고래'에서도 이북말을 써본 적이 있다. 경험이 있어서만은 아니고 사투리 연기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일본말로 된 대사도 몇 번 해봤는데 크게 어렵진 않았다. 목포 출신이라 전라도 사투리를 쓸 줄 알고 군대에서도 경남 출신 고참들과 지내 특히 부산 쪽 사투리에 익숙하다. 생활 속에서 여러 언어를 접했기 때문인지 습득도 빠른 편이다."
-이승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재치있고 예의바른 것 뿐 아니라 넓은 포용력과 상대의 장점을 흡수하는 능력까지 가진 친구다. 함께 연기를 할 때도 '형,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물어보곤 했다."
-하지원과도 잘 맞았나.
"'기가 막힌 배우'라고 생각한다. 상대배우의 눈빛만 보고도 느낌을 살려내고 호흡을 맞춰준다. 본능적으로 좋은 소질을 타고 난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하고 있어 빈틈이 없다. 하지원을 보면서 배우술·연기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함께 연기한 조정석의 입지가 달라졌다. 부럽지 않나.
"정말 부러운 녀석이다.(웃음) 처음 봤을때 '이렇게 바른 친구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고 선하게 살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를 떠나서 일단 주위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윤제문과도 조정석을 두고 '저 녀석 참 잘 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배역 때문에 감량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북한군인은 말랐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맞춰주는게 시청자들을 배려해주는게 아닌가싶어 7~8kg 정도 감량을 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땀복을 입은채 1.5리터 페트병 열 다섯 개와 큰 생수통을 작은 카트에 싣고 집 근처 약수터를 두어번씩 왔다갔다 했다. 그러고도 공원에서 뛰다가 달리기를 계속 반복했다. 한참을 뛰고 걷다보면 골반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힘이 든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태가 됐을때 기분은 좋다."
-뭐든 미지근한 걸 싫어하는 성격 같다.
"맞다. 운동을 할 때도 체력의 한계가 느껴질 정도로 몸을 다그친다. 술 한잔을 하더라도 시원하게 마신다. 어렸을 때 앉은 자리에서 친구와 함께 청하 서른병을 마신 적도 있다. 소주도 아홉병, 열병 정도는 거뜬했다. 이렇게 말하면 술독을 끼고 사는 것 처럼 느낄 수도 있을텐데, 사실 요즘에는 컨디션 좋을 때가 아니면 많이 못 마신다. 이제는 소주 두 세병 정도가 한계다.(웃음)"
-화끈한 성격과 인상 때문에 주변에서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이많은 형님들이 은근히 나를 어려워하는 면이 있긴 하다.(웃음)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도 '파이팅'을 외치면서 먹다보니 우왁스러워보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무서운 사람은 아니다. 항상 재미있는 말을 하면서 주변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오해는 금물이다."
-무명생활이 길었다.
"그 사이에 다른 일도 좀 해봤다. 영업일을 하면서 나름 잘 나갔던 적도 있고 고깃집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생활이 안정되고 돈도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막상 그 때마다 문제가 생기더라. 오히려 연극을 할 때는 사고가 없었고 마음도 편했다. 언젠가 공연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졸다가 깼는데 내 가방에 우리 공연 티켓이 붙어있었다. 티켓에는 '정만식씨,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 꼭 대성하시길"이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그걸 보고 울컥해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그 때의 기분을 잊지 않으려 항상 노력하고 있다."
-연기에 대한 본인만의 지론이 있다면.
"내 경험에 비춰봤을때 뭐든 욕심을 부리면서 쫓아가기 시작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다. 열심히 준비를 하되 욕심을 버리고 순리에 몸을 맡겼을때 비로소 기회가 찾아오더라. 유명세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욕심을 부리면 되려 일을 그르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유명한 배우가 되고싶다'는 후배를 만나면 좀 답답해진다. 누가 옳은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삶의 방식은 분명하다."
-나이가 있는데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인가.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남의 집 귀한 딸 데려와서 고생시키지 말라'였다.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