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과거에 있었다. 김병현(33·넥센)의 마수걸이 승리는 전성기 시절 선보였던 '잠수함 투구'의 산물이었다. 사이드암에 가까웠던 팔 각도를 언더핸드로 내리자 공에 파워와 무빙이 생겼다.
김병현은 지난 20일 잠실 두산전에서 6이닝을 1실점(무자책점)으로 막고 시즌 첫 승을 거뒀다. 국내 1군 무대 데뷔 후 6경기, 선발 등판 횟수로 치면 5경기만이었다. 이날 피칭을 보면 그를 다시 '핵잠수함'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잠수함의 발사각 조정
김병현은 지난 14일 KIA전에서 5이닝 동안 5점을 내주고 무너진 뒤 폼을 살짝 바꿨다. 팔을 조금 내렸다. 정민태 넥센 투수코치는 "한창 좋았을 때 메이저리그 시절 비디오를 보니 지금보다 릴리스포인트가 낮았다. 그때 폼으로 던져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김병현은 1999년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입단 후 4~5년 동안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와 프리즈비 슬라이더로 대형 타자의 방망이를 헛돌게 했다. 그의 공 끝의 힘이 좋고 움직임이 변화무쌍해 '마구'로 불렸다.
10여 년이 흘렀고 메이저리그 시절 선보였던 마구를 던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과거의 폼으로 돌아갈 순 있었다. 이전까지 그의 릴리스포인트가 어깨 높이에서 형성돼 사이드암 내지 스리쿼터에 가까웠다면 이날은 허리 약간 위에서 공을 놨다. 팔을 내리자 구속은 줄어드는 대신 공 끝의 변화가 심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살아난 회전력, 묵직해진 공
김병현은 이날 직구 최고 시속이 142㎞로 이전 등판 때보다 최고 5㎞ 정도 낮았다.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위는 아니었다. 삼진은 선발 등판 최소 타이인 2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두산 타자들은 김병현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언더핸드스로 출신인 김진욱 두산 감독은 21일 김병현의 호투에 대해 "컨트롤이 잘 되고 공 끝이 괜찮았다.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오는 직구는 이전 같으면 안타가 됐을 공인데 휘어 들어오면서 안 맞더라. 그동안은 힘으로 던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을 손에서 놓는 순간 몸이 일어서면서 밸런스가 무너졌다. 이날은 중심이 제대로 잡혀 좋은 공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김병현은 아웃카운트 18개 중 10개를 땅볼로 잡아냈다. 공을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맞힌 타자는 6회말 2루타를 친 김재환뿐이었다. 정민태 투수코치는 "같은 직구라도 떠오르고 가라앉고 하니 타자들이 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남은 과제는 스피드 업
김병현은 이날 경기 뒤 "일부러 힘을 조절했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세게 던지면 자칫 다시 팔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투구 폼을 바꾼 뒤 첫 등판. 자칫 욕심을 내다 밸런스가 다시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 정민태 코치도 "경기 전에 80% 정도로 던지라고 말했다"고 했다.
넥센 코칭스태프와 김병현은 곧 '전력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특유의 공 궤적이 나오는 지금의 자세를 유지하면서다. 정민태 코치는 "몸이 더 좋아지면 140㎞ 후반은 찍을 것이다. 낮아진 팔 각도에서 스피드까지 회복하면 전성기에 버금가는 피칭을 재현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