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가 오해를 낳았고, 넘어서 안될 선까지 넘어버렸다. 빈볼 시비로 시작된 벤치클리어링이 선후배간의 설전과 인종차별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4일 KIA와 두산의 경기가 열린 광주구장. 경기 전 최대 관심사는 전날 벌어진 벤치클리어링의 진상이었다. 3일 두산 마무리 프록터(35)는 9회말 2사 후 대타 나지완(27)에게 머리 위를 넘어가는 초구를 던졌다. 빈볼이라고 느낀 나지완은 프록터를 향해 걸어나가며 항의했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모두 나와 충돌했다.
벤치클리어링이 끝난 뒤에는 나지완과 두산 김현수(25)의 설전이 문제가 됐다. 신일중·고교 선후배 사이인 둘이 욕설을 주고 받는 모습이 TV 중계화면을 통해 나가자 논란이 커졌다.
▶나지완·김현수의 욕배틀
선동열(49) KIA 감독도 진상을 알고 싶어 했다. 선 감독은 "빈볼 시비로 인한 벤치클리어링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후 나지완과 김현수가 싸우더라. 둘은 고교 선후배 사이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궁금해했다. 때마침 나지완이 타격훈련을 위해 더그아웃에 나타났고, 선 감독은 그를 불러 세워 진상을 물었다.
나지완은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작심한 듯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는 "벤치클리어링이 났을 때 김현수가 유독 나에게 덤비는 모습이었다. 벤치클리어링이 끝나고 외야로 돌아가면서도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불만을 나타냈다. 중·고교 2년 선배로 현수가 1학년 때 나는 3학년이었다. 같이 야구를 해 온 사이인데 그런 모습을 보여 화가 났다. 그래서 2루로 가서 외야에 있는 김현수를 향해 '선배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면서 욕설을 했다. 그런데 현수도 맞받아치면서 욕을 하더라. 그래서 경기 후에도 계속 말다툼을 했다"고 밝혔다.
▶Yellow Pig? Yell it me NIP?
나지완이 화가 났던 이유는 또 있었다. 자신이 타석에 들어서기 전 프록터가 몇 마디를 외쳤는데, 자신이 듣기에 'Yellow Pig'로 들렸다는 것. 나지완은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최)희섭 형한테 뜻을 물었더니 인종 차별의 뜻이 담긴 말이라고 하더라. 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인종 차별은 참을 수 없다"며 흥분했다. 선 감독은 "설마 그랬겠나. 두산 관계자가 오면 만나서 오해를 풀어라"며 그를 다독였다.
KIA 선수단의 훈련이 끝날 때쯤 원정팀 두산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했다. 타격 훈련 마지막 조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나지완은 두산 선수단이 몸을 풀기 시작하자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지완은 두산 관계자들에게 "지난 번 잠실(5월30일)에서 과한 액션을 취한 것을 인정한다. 어제 초구에서 빈볼을 던진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런데 왜 나에게 'Yellow Pig'라고 말했느냐. 인종차별적이 발언 아닌가"라며 따져 물었다. 김종국 KIA 코치가 나지완을 말렸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두산 측은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프록터가 마운드에 오르기 전 통역·니퍼트에게 최근 투아웃 이후 안타를 많이 맞았기 때문에 투아웃이 되면 소리쳐 응원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두산 통역은 "투아웃을 잡았는데 니퍼트가 앉아서 박수만 치길래 프록터가 더그아웃을 향해 'Yell it me NIP(소리쳐줘 니퍼트)!'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프록터는 나지완이 화를 내는 이유를 전해들은 뒤 "Oh My God"을 외치며 당혹스러워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차별은 퇴출까지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두산 측 설명을 들은 나지완은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며 물러났다.
▶"김현수 사과 안 받아!
나지완의 화가 완전히 가라앉은 건 아니었다. 전날 욕설을 주고 받은 김현수는 경기 전 나지완을 찾아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김현수는 전날 전화 통화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직접 만나서 사과했다는 것이 두산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나지완은 김현수에 대한 서운함을 끝내 풀지 않았다. 나지완은 사과하는 김현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