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7월까지 데뷔한 아이돌 그룹만 줄잡아 25개팀. 한 달에 네 그룹 꼴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 셈이다.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POP 열풍에 가요 제작자들의 관심이 아이돌 그룹에 올 인돼 있다는 설명. 팬덤만 확실하게 자리잡아 놓으면 전 세계를 상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달콤한 꿈이 현실이 되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성공적으로 데뷔한 보이프렌드·B1A4 등이 '아이돌 광풍'의 마지막 수혜자라는 말도 들린다. 가온 차트 디지털 종합차트(온라인 다운로드·스트리밍 서비스·BGM 판매량·모바일 서비스 합계)를 기준으로 신인 아이돌 그룹의 성적표를 살펴봤다.
▶올해 벌써 25개팀 겉모습만 화려한 데뷔
하도 많아서 팀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멤버 이름을 외우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진 팀은 약 30팀(표1 참조). 대형 기획사의 노하우가 집약된 팀부터, 신생 기획사의 패기어린 그룹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SM엔터테인먼트는 최소 1년에서 5년 동안 가르친 남자 연습생 12명을 두 팀으로 나눠 한국에서 데뷔한 EXO-K(엑소케이)와 중국에서 활동하는 EXO-M(엑스엠)을 내놨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연기·춤·노래 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남성 2인조 JJ프로젝트를 신인 그룹으로 선보였다. 강한 남자의 매력을 어필하는 남성 6인조 B.A.P(비에이피), 상큼한 매력의 걸그룹 헬로우비너스, AOA(에이오에이) 등도 줄줄이 데뷔해 '제2의 빅뱅·소녀시대' 등을 꿈꾸고 있다.
하반기에도 아이돌 그룹 러시는 이어진다. 가디스·퓨리티·테이스티 등 다양한 아이돌 그룹이 잇따라 데뷔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이처럼 가요 기획사들이 아이돌 그룹 제작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아이돌 그룹의 신곡 발매 주기가 매우 빨라 장기간 앨범 준비를 하는 솔로 보컬리스트나 싱어송 라이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아서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아이돌 그룹은 디지털 싱글로 거의 쉬지 않고 활동한다. 해보고 안되면 다시 활동을 잠시 접고 다시 신곡을 내는 식이다. 대중들의 피드백에 즉각 반응을 보인다"며 "짧은 시간에 비주얼부터 무대 퍼포먼스까지 다 보여줄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하는 R&B나 발라드 가수보다 상대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고 전했다.
K-POP 열풍에 동참해보겠다는 것도 가요 제작자들이 신인 아이돌 그룹을 쉬지 않고 만드는 이유다. 강태규씨는 "냉정하게 말해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다보면 나도 K-POP 스타가 될거라고 기대하는 아이돌이 너무 많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며 "아이돌 그룹이라고 무조건 전세계의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실력인 기본이고, 확실한 색깔과 경쟁력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위 안에 달랑 두 곡..이름뿐인 ‘우상’들
아이돌 홍수 속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팀이 없다. 가온 차트 '2012년 상반기 결산 다운로드 차트'를 살펴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100위권내는 물론, 200위권 내에서도 신인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이 차트에 따르면 1위는 티아라 '러비 더비'가 차지한 가운데 신인 중에서는 솔로 가수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에일리의 '헤븐'이 무려 4위에 올랐고 버스커버스커는 '벚꽃 엔딩'으로 6위에 오른 것을 비롯, 20위·22위·27위·38위·47위·67위·75위·79위에 수록곡을 올려 가장 많은 곡을 히트시킨 그룹이 됐다. 존박의 '폴링'은 23위, 울랄라세션의 '아름다운 밤'도 45위에 올라 Mnet '슈퍼스타K'의 파워를 입증했다.
반면 신인 아이돌 그룹 중에는 인기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제작한 EXID(이엑스아이디)의 순위가 가장 높았다. 111위에 올랐고 스피카가 '러시안룰렛'으로 131위에 올라 그 뒤를 따랐다. 200위 중에 신인 아이돌 그룹의 곡이 달랑 2곡만 포함돼 '상반기 아이돌 농사'는 흉작이라는 평가가 어울린다.
온라인 다운로드는 물론, 스트리밍 서비스와 모바일 서비스까지 합산한 디지털 종합 차트를 살펴보면 아이돌 그룹의 부진한 활동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주간 종합 차트를 50위(표2 참조)까지만 놓고 보면, 이름을 올린 팀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1월에는 스피카(50위)만 순위에 올랐고, 2월에는 B.A.P의 '워리어'(44위), 스피카의 '러시안룰렛'(50위), EXID의 '후즈 댓 걸'(40위)이 겨우 50위에 들었다. 3월에는 에일리·존박 등 솔로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EXID '후즈 댓 걸'(36위) 스피카 '러시안룰렛'(36위) 만이 고군분투했다. 4월에도 신인 그룹의 활약은 미비했다. 버스커버스커가 '벚꽃 엔딩''여수 밤바다''꽃송이가' 등으로 차트를 뒤흔든 가운데, 셋째주 EXO-K가 '마마'로 46위에 오른 것이 전부다.
5월에는 B.A.P가 '파워'로 48위와 38위에 오르며 2주 연속 순위권에 진입했고, 셋째주와 넷째주에는 걸그룹 헬로비너스가 '비너스'로 42위·35위에 올랐다. 6월에는 JYP 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 JJ프로젝트 '바운스'로 데뷔했지만 30위에 그쳤고, 헬로비너스 '비너스' 38위로 기세를 이어갔다. 7월에는 대형 가수들의 컴백까지 이어지며 설자리를 더욱 잃었다. B·A·P만이 세번째 싱글 '노머시'로 주간차트 42위에 올라 체면을 살렸다. 전체적으로 순위로 보면 매우 부진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룹도 많지 않았다.
▶아이돌 팬은 한정돼 있는데 그룹만 계속 늘어
벌써부터 올해 신인상을 받을 만큼 크게 활약한 팀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B.A.P·EXO-K 등 선배들을 위협할 만큼 실력있는 팀들도 제법 있었지만 화제 몰이는 물론, 음원 판매까지 과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 가요 관계자 사이에서도 '예전 같지 않다'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가요계가 살벌할 정도로 치열해진 만큼, 과거에 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이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유난히 신인 그룹의 활약이 부진한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로 아이돌 시장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이다. 더이상 팬덤 형성이 어려울 만큼 이미 많은 팀들이 활동하고 있어 당분간 신인급이 설자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2년에 걸쳐 아이돌 그룹 데뷔를 준비한 한 제작자는 "싱글 한 장만 놓고,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올해에는 곡을 더 내도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돌 음악을 즐겨듣는 절대 팬층이 있는데, 이미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 너무 많아서, 신인 그룹이 끼어들 틈이 없다. 특히 남성 그룹의 경우, 팬덤이 인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더이상은 쪼개고 쪼개도 팬덤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요즘 나오는 친구들이 실력이 절대 떨어져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두 번째로 아이돌 음악 자체가 전처럼 큰 폭발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년째 원더걸스 '노바디'같은 국민 히트곡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현아·현승의 '트러블 메이커', 씨스타 '나혼자', 빅뱅 '판타스틱 베이비' 정도를 제외하고는 폭발적으로 히트한 '아이돌 노래'가 없었다. 대신 버스커버스커·싸이 등 개성있는 음악이 자리를 대신한 상황. 에일리·존박 등 신인 솔로 가수들의 활약과, 신보라·형돈이와 대준이·처진달팽이 등 이른바 '개가수'들이 차트를 휩쓸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씨스타의 '나 혼자'를 쓴 작곡가 똘아이박은 "아직도 생산되는 가요의 70% 이상은 분명 아이돌 음악이다"라면서도 "굉장히 많은 아이돌 음악이 소비되면서 대중의 관심이 개성있는 음악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만들 때 개성을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똑같은 음악, 똑같은 모습이라면 성공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