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넥센 감독은 10일 목동 한화전을 앞두고 양팀 선발 투수를 비교하면서 웃었다. 누가 봐도 한쪽으로 무게가 기울긴 했다. 국내 최고 투수로 꼽히는 류현진(25·한화))과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기대주 강윤구(22)의 좌완 맞대결.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갔다. 류현진은 또다시 불운에 울며 승수 추가에 실패했다. 강윤구는 2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를 펼쳤지만 승리는 따내지 못했다.
또 타선 도움 못 받은 류현진
이날 목동구장 지정석에는 여러 명의 외국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류현진의 투구를 보려는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었다. 지난 4일 대전 경기에서도 류현진은 스카우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을 던졌다. 류현진은 스카우트들이 왔다는 얘기에 "그래요?"라며 무심한 듯 말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스피드건을 들고 류현진의 구속을 점검하는 한편 꼼꼼히 메모하기에 바빴다.
류현진의 투구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최고 시속 150㎞의 빠른 공은 힘이 있었다. 명품 체인지업도 여전했다. 주자가 없을 땐 직구 위주로 던지다가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면 체인지업을 꺼내들었다. 6회 1사 2루에서 강정호를 상대로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이날 투구의 백미였다.
하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류현진을 무너뜨렸다. 6회 다음 타자 박병호를 고의4구로 내보낸 뒤 유한준에게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가운데로 몰리면서 적시타를 맞았다. 타구가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완전히 가르는 사이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아 0-0의 팽팽한 균형이 무너졌다. 결국 류현진은 6이닝 4피안타 7탈삼진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했지만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6승 사냥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한화 방망이는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온 뒤 폭발했다. 한화는 0-2로 뒤진 8회초 안타 2개와 볼넷 3개를 묶어 2-2 동점을 만든 뒤 9회 1사 1·2루에서 터진 오선진의 2타점 결승 3루타로 4-2 역전승을 거두며 5연패에서 벗어났다. 류현진은 패전을 면한 걸 위안으로 삼아야했다.
볼넷과 삼진의 절묘한 하모니, 강윤구
강윤구는 시속 140㎞대 중반의 직구와 130㎞대 후반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진다. 구위만 보면 젊은 좌완 중 손에 꼽히는 선수다. 문제는 제구력. 많은 삼진을 잡아내면서도 볼넷을 많이 내줘 위기를 자초하곤 한다. 바로 전 등판인 4일 LG전에서는 볼넷을 하나밖에 주지 않아 7이닝 무실점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영점만 잡히면 좋은 투수'라는 말에 김시진 감독은 "그 얘기만 벌써 몇 번째냐"며 혀를 찼다.
이날 경기에서도 강윤구의 제구력은 들쭉날쭉했다. 1회 선두타자 오선진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강윤구는 이여상의 희생번트 후 최진행에게 볼넷을 줘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김태균과 이대수를 범타 처리해 실점은 간신히 면했다. 이후에도 볼은 많았지만 구위가 좋아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7회초 2사까지 무안타 행진을 벌인 강윤구는 오재필에게 중전안타를 맞고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투구수는 115개. 강윤구는 6⅔이닝 1피안타 4볼넷 10탈삼진 무실점으로 류현진과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지만 구원투수진의 역전 허용으로 시즌 3승째를 놓쳤다. 한화는 5연패에서 벗어난 반면 넥센은 4연패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