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때때로 작은 기적을 만든다. 지적장애 스포츠 선수 송기보(25)와 어머니 고희금(49)씨는 "스포츠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송기보는 자폐성 지적장애 3등급의 운동 선수다. 그는 그동안 서울시 대표로 국내외 스페셜올림픽에 수차례 참가한 베테랑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은 골프와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여름에는 골프, 겨울에는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 나서는 생활이 벌써 6년째다.
어머니 고씨는 "스케이트와 골프를 하기 전에 기보는 주의가 매우 산만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앉아서 인터뷰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운동에 전념하기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집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기보에게 스포츠는 운명을 바꾼 기적의 씨앗이었다.
○…스페셜올림픽은 나의 힘
기보가 서울 인강학교 5학년(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 때였다. 체육선생님이 학부모 면담시간에 기보에게 운동을 가르칠 것을 권했다. 고씨는 망설였다. "선생님께서 처음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권했는데, 지적장애가 있는 어린 기보에게는 뭘 가르쳐도 불안했다. 그때 마음으로는 스케이트를 가르치면 제대로 서지도 못해서 넘어져 머리가 깨질 것 같더라"고 했다.
그렇게 불안하게 시작한 인라인 스케이트에 기보는 꽤나 재능을 보였다. 전에 볼 수 없던 집중력도 보였다. 육상과 인라인 스케이트에서 동계 종목인 스피드 스케이팅까지 배우게 됐다. 기보는 스피드 스케이팅 실력이 쑥쑥 늘어 서울시 대표로도 뽑혔다. 주종목은 500m와 1000m다.
국내 대회에 참가하면서 스케이팅의 재미를 알게 된 기보는 스페셜올림픽 국제대회에도 나갔다. 기보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2003년 더블린(아일랜드) 여름 대회와 2005년 나가노(일본) 겨울 대회를 꼽았다. 특히 나가노 대회 때는 경기에 참가한 것보다도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기억이 아직도 즐겁게 남아있다. 기보는 대회 기간 중 3박4일 동안 대회조직위와 연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홈스테이를 했다. 기보를 보살펴준 홈스테이 집의 할머니는 기보가 경기할 때 체육관에 직접 나와 응원을 해줬다. 일본에서만 갈 수 있는 전통 온천 체험 프로그램 등 잊지 못할 추억을 잔뜩 만들었다.
어머니 고씨는 "국내와 국제 스페셜올림픽에 셀 수도 없이 많이 나갔다"며 "기보에게 스페셜올림픽은 한마디로 '친숙함'이다"라고 했다.
스페셜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하는 올림픽처럼 금-은-동메달을 가리지 않는다. 참가자 전원이 메달을 받는다. 기보의 집에는 올림픽 스타 못지 않게 각종 메달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어머니 고씨는 "메달이 너무 많아서 처치하기 곤란한 정도"라며 웃었다.
○…내일을 향한 드라이브샷
스피드 스케이팅의 매력에 푹 빠져서 살았던 기보는 6년 전 운명처럼 골프를 만났다. 고씨는 "평소 기보가 골프에 관심이 많았다. 동네 골프연습장 옆을 지날 때면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뒤로 빼고 연습장을 바라보곤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골프는 기보에게 가르치기 불안한 종목이었다. 어머니 고씨는 "골프는 다른 종목과 달리 클럽을 들고 휘두르는 운동이다. 자칫 골프채를 잘못 휘두르거나 놓치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한국체대에서 진행하는 지적장애아 대상 골프교실에 다니게 됐다. 그는 혼자서 스윙에 몰두할 수 있고, 또 연습한 만큼 성적이 늘어가는 골프에 재미를 붙였다. 특히 호쾌한 드라이브샷 뒤에 쭉쭉 뻗어나가는 공을 보는 걸 너무나 좋아했다.
고씨는 "2006년에 한체대 프로그램으로 골프를 배우다가 이듬해 대구 여름 스페셜 대회 골프 부문에 참가했다. 그런데 거기에 온 한 코치님이 기보가 하는 걸 보더니 재능이 있다며 같이 운동을 해보자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기보는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남부장애인복지단에 있는 골프 클럽 '티업 교실'에 들어가게 됐다. 서울 중계동에 사는 기보가 클럽에서 연습하려면 신대방동의 보라매공원 앞까지 먼 길을 가야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기보는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연습장에 나갔다.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스페셜올림픽 골프는 대회마다 경기 진행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9홀로 진행될 때도 있고, 18홀을 다 돌 때도 있다. 주로 캐디 대신 코치가 플레이를 도우면서 라운드한다. 기보는 지난달 마카오에서 열린 마카오 스페셜 대회 때 9홀 50타를 쳐서 생애 베스트 스코어를 냈다. 지난해 서울시 포트매리온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장애아들이 실전 라운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몇몇 골프장 덕분에 실력이 쑥쑥 늘었다.
고씨는 "기보는 자신의 스코어를 꼼꼼하게 체크하며 플레이 하진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으면 금세 시무룩해진다. 반대로 경기가 잘 풀릴 땐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난다"고 설명했다.
기보는 16일부터 시작하는 경산 스페셜대회 골프 부문에 참가한다. 무더위에도 쉬지 않고 연습한 실력을 마음껏 뽐낼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