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이 인터뷰를 멈추고 투수 한 명을 유심히 살핀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네. 가능성이 1%는 되는 거야." 한 투수가 고양시 야구국가대표훈련장에서 공을 던졌다. 지난주 고양은 고교·대학 졸업자 중 프로 미지명 선수를 대상으로 트라이 아웃을 열었다. 신청자가 몰렸다. 4개팀이 구성됐고, 두 경기를 통해 기량을 평가했다. 김광수(53) 고양 수석코치는 "원더스가 유명세를 얻긴 했나 보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지난해 참가자보다 낫다"고 말했다. 17일에는 대한야구협회 6년 이상 선수 등록자들을 대상으로 트라이아웃을 시작했다.
트라이 아웃 제1경기와 제2경기 사이 휴식 시간. '고양 1기 멤버'들이 야구장에서 티 배팅을 했다. 김 감독이 또 인터뷰를 중단한다. "저 선수 좀 봐. 처음엔 센터(중견수) 앞으로만 공을 보내도 '와' 하고 만족하더라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 허리를 집어넣고 친다니까. 공이 더 멀리 가지."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된 선수를 모아 창단한 독립구단이 프로팀 2군과 맞서 5할에 가까운 승률(17일 현재 0.488·20승7무21패)을 거두고, 5명의 선수를 프로로 보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패배감에 젖어있던 선수들이 "한계를 설정하지 말자"고 소리친다. 김 감독은 "이제 내일을 생각해야지"라고 했다. '오늘'은 새로운 기적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 단계다.
딸 시집 보내는 마음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과 같은 자리에서 식사도 하지 않는 '엄한 아버지'다. 하지만 고양 선수들이 만들어낸 '기적' 앞에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김 감독은 "5명의 선수들을 프로로 보내면서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팀을 떠나면서 '감독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 딸을 출가시킨 아버지처럼 정말 가끔 그들이 잘 지내는지 몰래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제 더 잘해야 한다'고 격려도 해주고"라고 말했다.
프로가 아닌 군대로 보낸 '자식' 한 명도 김 감독을 숙연하게 했다. 김 감독은 최근 고양을 떠나 군 입대한 선수의 어머니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감독님, 제 아들이 이렇게 어른이 됐네요.' 김 감독은 지난 2월 사비를 털어 고양 선수들 모두에게 5000엔(7만3000원)씩을 선물했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였다. 그 중 한 선수가 5000엔을 봉투에 넣어 어머니에게 맡겼다. "절대 뜯지 마세요"라는 당부와 함께. 군에 입대해 받은 월급을 어머니에게 보낸 아들은 "제 군대 월급을 모아 감독님께서 주신 용돈과 함께 감독님께 드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도, 김 감독도 코끝이 찡했다.
기적의 출산, 산통을 예고하다
"스윙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밤을 새워서라도 배트를 휘둘러라. 시간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김 감독의 철학은 팀 전체에 퍼졌다. '휴일'로 지정된 날에도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왔다. 김 감독은 "고양 야구장은 작을지 몰라도, 그 주변에 배트를 휘두를 곳은 많다. 훈련할 장소를 찾으려는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경기장 안팎, 여기저기서 스윙을 하는 고양 선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겨울. 김 감독은 "이번에는 '대단한 겨울'을 준비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그의 검지가 쪽지 하나를 가리킨다. 9월부터 내년 4월5일까지의 훈련 스케줄. 휴식일은 12월31일부터 1월4일까지 단 닷새 뿐이다. 고양 선수들은 7개월 동안 고양·속초·강릉·전주·일본 고치를 오가며 훈련을 한다. 김 감독이 고양과 재계약을 확정(8월29일)한 뒤 처음 한 일이 '가을·겨울·봄 훈련 일정 작성'이었다. 김 감독은 "캠프를 통해 내년에는 새로운 고양 원더스를 선보일 것이다. 자신 있다"라고 했다.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훈련량, 산통을 예고하는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