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도 '응칠바람'이 거세다. 약속이나 한 듯이 가수들이 '백 투 더 90's'를 외치며 복고의 옷을 입고 있다.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이 끄집어낸 90년대 향수에 중장년층뿐 아니라 10대들까지 열광하자 발빠르게 90년대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대표그룹 R.ef는 컴백을 선언했고, 오렌지캬라멜·비투비 등 최신 아이돌까지 90년대 노래와 패션에 홀릭 중. '응칠'이 재확인 시킨 90년대 가요의 힘이 십여년이 지난 2012년 가을, 가요계에 무서운 영향력을 뻗히고 있다.
▶'응칠'마케팅에 홀릭하다
'응칠'마케팅에 나선 가수들은 신구 세대가 따로 없다. 오렌지캬라멜의 신보 컨셉트는 아예 '백 투 더 90's'다. 타이틀곡 '립스틱'은 일렉트로닉 사운지만 90년대 나이트 클럽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복고풍의 댄스곡. 멤버들의 모습은 딱 김완선과 신디로퍼다. '무스 바른' 과장된 헤어스타일에, 색동옷을 입었다. 재킷 사진 속 오렌지캬라멜은 '롤러장'에서 만난 선배 언니들 같다. 오렌지캬라멜은 "90년대 유행했던 캐릭터를 하나씩 코스프레 할 거다. 강시나 춘리(스트리트파이터) 등을 따라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남성 7인조 비투비는 아예 듀스풍의 노래 '와우'를 들고 나왔다. 기획단계부터 90년대 듀스·바비브라운 등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무대를 연구했다. 90년대 소품도 등장한다. 힙색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한때 '국민백팩'이라고 불렸던 J브랜드 가방을 메고 나온다.
컨셉트 자체가 복고인 남성듀오 UV는 콘서트 '백 투 더 미쳐'(10월 6~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의 티켓 가격을 90년대로 내렸다. 요즘 티켓가격은 대부분 8만원 이상이지만, 3만 3000원~4만 4000원으로 과거로 갔다. 공연제작사는 "UV의 음악이 90년대 디스코, 힙합풍이다. 그룹의 색깔 자체가 복고라서 요즘 분위기와 잘 맞았다"면서 "공연 내용도 향수를 자극한다. 그런데 공연 가격만 그대로이면 안될 것 같아 90년대 가격으로 대폭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의 '오빠들'도 돌아왔다. '이별공식''고요속의 외침' 으로 사랑 받았던 그룹 Ref가 '사랑공식'으로 컴백했다. Ref는 "'이별공식'느낌에 최신 트렌드를 가미했다"면서 "요즘 노래들이 사운드는 좋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오래 남는 멜로디, 그게 90년대 음악의 힘"이라고 말했다.
▶'응칠'이 왜 가요계까지…
'응칠'은 형식은 드라마였지만, 마치 90년대 '가요 톱 10'을 보는 듯했다. 쉴 새 없이 들렸던 젝스키스·HOT 의 노래뿐 아니라 김종환·조성모·김동률·양파·리아 등 당시 스타들의 명곡들이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또 서인국·정은지 등 주연 배우들이 모두 가수란 점도 '음악 드라마'느낌을 주는데 한몫했다. 드라마가 히트를 하면서 서인국·정은지가 부른 OST'올 포 유'와 에이핑크의 '우리 사랑 이대로' 등 리메이크 곡들은 음원차트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 시절' 노래들을 다시 듣고 싶다는 팬들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건드리면서 '음원장사'까지 된다는 걸 확실히 알려준 것. 한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요즘 아이돌 노래가 똑같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신곡들이 비트에 빠졌다면 예전 노래들은 노랫말과 멜로디가 좋았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상반기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도 복고풍이었다. 그래서 요즘엔 90년대 풍 가요를 써달라고 작곡가들에게 주문하는 제작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최영균 씨는 "'응칠'의 주인공들이 어린 아이돌 출신이라 당시를 살았던 30대~40대들 뿐 아니라 10대들도 90년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영화 '건축학개론', 버스커버스커에 이어 '응칠'의 히트까지 90년대를 곱씹는 문화콘텐츠가 올해 유난히 많았다. 그 시절 감성적인 노래들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요계에도 발빠른 '응칠' 마케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