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KDB코리아오픈 단식 본선 2회전에서 타미라 파스첵(세계랭킹 35위·오스트리아)에게 0-2(2-6 0-6)로 져 패한 이소라(468위·원주여고)의 말에는 한껏 웃음이 묻어났다. 경기에 진 사람답지않게 통통튀는 말투가 신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소라 본인도 떨어질 걸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소라는 이번 대회에 와일드카드를 받고 본선에 진출했다. 이소라는 1회전부터 마리아 키릴렌코(14위·러시아)와 대결하면서 목표였던 '1승'도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이소라의 편이었다. 갑자기 키릴렌코가 등이 아프다며 기권을 한 것. 이소라는 행운의 2회전에 진출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 본선 승리를 이뤄냈다. 행운은 계속되지 않았다. 이소라의 2승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소라는 경기 후 "한 번 더 기회가 생겨서 감사했다.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날 이소라는 1세트 초반 파스첵과 게임스코어가 비슷하게 가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갑작이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2세트에서는 단 한 게임도 따내지 못했다. 이소라는 "서브부터 모든 것이 미세하게 달랐다. 정말 수준이 높았다"며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했으면 더 잘했을텐데...아쉽다"고 하면서도 발랄한 기운은 여전했다.
긴장을 잘 안하는 편인 이소라는 행운의 2회전 기회를 얻고도 전날 숙면을 취했다. 이소라는 "전날 꿈도 꾸지 않고 아주 푹 잘 잤다"며 '강심장' 면모를 보였다. 그래도 경기가 코앞에 다가오면 조금 떨리기 마련이다. 이소라는 그 때마다 '마린보이' 박태환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는 "신나는 아이돌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진정된다"고 강심장 비결을 살짝 귀뜸해줬다.
이번 대회는 아쉽게 마무리됐지만 이소라의 목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소라는 지난해 윔블던 대회 챔피언인 페트라 크비토바(5위·체코)를 가장 좋아한다. 이소라는 "크비토바처럼 나도 왼손잡이라 더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호주오픈에주니어부에 출전하기 위해 호주에 간 이소라는 크비토바를 만났다. 그는 "크비토바가 경기에 패해 심기가 불편해보여 싸인은커녕 말도 못해봤다"며 아쉬워했다. 이소라는 언젠가 톱 랭커 크비토바처럼 되는 게 꿈이다. 그리고 올해 목표는 랭킹을 300위 초반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소라는 "앞으로 열심히 훈련해서 꼭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이소라는 삼성증권 후원 선수로 지난 2008년 미국 오렌지보울국제주니어대회 14세부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국내 여자 테니스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후 국제주니어대회와 프로서키트를 병행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지난 9월초 영월서키트에서 단식 우승하며 생애 첫 프로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또 2010년 4월 김해챌린저 16강에서 상대인 후지와라 리카(일본)가 부상으로 경기전에 기권해 행운의 8강 진출로 국내 최연소 기록을 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