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우(19·제물포고 3)는 3년 전 훈련을 하다 보청기를 고장낸 적이 있다. 지금 그가 사용하는 양쪽 보청기의 가격은 800만원. 박병우는 "보청기가 정말 비싼데, 야구를 하다 고장을 냈다. 아버지 어머니께 정말 죄송했다. 앞으로 내 돈으로 보청기를 사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 정기문(53)씨는 "난 병우가 좋아하는 야구를 오래 하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데"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모자의 꿈이 자란다.
박병우는 보청기를 끼고 마운드에 선다. 그래도 뒤에서 하는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사회는 그를 '청각 장애인'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김성근(70) 고양 감독은 "박병우는 원더스 선수 중 한 명일 뿐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병우를 '구제'하지 않았다.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 발이 느린 선수도 다른 장점이 있으면 야구 선수로 살 수 있다. 병우는 그저 '잘 안 들리는' 단점 하나를 지닌 선수일 뿐이다. 대신 투구폼이 예쁘다. 가능성을 봤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고양 입단 과정과 향후 생활 모두 '특별 대우'는 없다. 오른손 투수인 박병우는 지난 8월 프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이후 테스트를 거쳐 고양에 입단했다. 김 감독은 "테스트 당시 시속 135㎞까지 던졌다. 체중을 불리고, 기술적인 부분을 다듬으면 구속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테스트를 통과한 다른 선수들과 함께 20일 팀 훈련에 합류한 박병우는 22일부터 '합숙 생활'을 한다. 21일 고양 야구국가대표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육성과 필담을 섞어 나눈 대화에서 "고양에서 뛰다 LG에 입단한 이희성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그런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고양에 입단한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박병우는 태어나서 첫 생일을 맞기 전에 사고를 당했다. 어머니 정씨는 "병우가 10개월쯤 됐을 때다. 쇠 젓가락을 들고 전기 콘센트를 건드렸다. 병원에서는 '괜찮을 거다'라고 했는데…. 이후 6개월마다 검진을 받았는데 그때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디섯 살이 됐을 때 '청력에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부모는 박병우를 일반 학교에 보냈다. 박병우는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며 웃었다. 대신 그는 야구에 마음을 빼앗겼다. 정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여름 '삼성 리틀야구단'에 입단하겠다고 하더라. 안내문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가 귀가 잘 안 들립니다. 그래도 야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김용희(현 대구 꾸러기 리틀야구단 감독) 감독님이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한 번 데리고 오십시오'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우리 아이가 야구를 시작했다. 5학년 때 대구 본리초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했다. 초·중·고교 때는 '야구 잘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중학교 때 병우가 '엄마, 나 야구 오래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즐겁게, 열심히 야구했다"고 말했다.
대구중 2학년 때 인천으로 이사한 그는 인천 야구 명문 제물포고에 입학했다. 고교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1경기에 나서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박병우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이제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물론 험난한 일정이 눈앞에 있다. 고양은 프로 버금가는 혹독한 훈련을 한다. 김 감독은 9월 중순부터 내년 4월 초까지, 휴식일이 단 열흘인 '살인적인 스케줄'을 짰다. 정씨는 "병우가 1남 2녀 중 막내다. 집에서는 투정도 자주 부린다. 그런데 야구할 때는 단 한 번도 불평을 한 적이 없다. 주위에서 말씀하셨다. '병우와 김성근 감독의 만남은 정말 대단한 인연이 될 것이다'라고. 병우는 참 순한 아이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대단한 고집을 피운다.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이다. 병우 손에 물집이 잡히고, 그게 터져도. 나는 울지 않을 거다"라고 했다.
박병우는 "야구를 할 때는 정말 신이 난다. 혹독한 훈련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커브·슬라이더를 던진다.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KIA 윤석민 선배를 닮고 싶다"고 말한 그가 "청각 장애인 1호 프로 선수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0초쯤 지났을까. 박병우는 "청각 장애인 1호 말고, 프로에서 오래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수정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