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리그는 강등제가 도입됐다. 강등이 확정된 상주 상무와 함께 15위 팀이 내년에 2부리그로 내려간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팬들은 즐겁지만 감독들은 속이 탄다. 특히 강등권에 근접한 13위 전남(8승10무16패·승점 34), 14위 광주(6승12무16패·승점 30), 15위 강원(8승5무21패·승점 29)의 세 사령탑은 지옥같은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팀의 운명을 짊어진 세 감독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1부리그 잔류다.
◇ 13위 하석주 감독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돼"
전남은 하석주(44) 감독 부임 이후 3승2무2패를 거뒀다. 그러나 최근 2경기에서 1무1패로 다소 주춤했다. 강등권인 15위 강원과의 승점 차도 5점에 불과하다. 아직 불안하다.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성적에 하 감독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그는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돼 요즘 식사를 적게 하고 있다"면서 "요즘에는 경기 비디오를 보고 머리가 아파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한 심리학 박사의 상담을 받고 뛰는 운동을 하면서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역 시절 스타 플레이어였던 하 감독은 가끔 그라운드에 뛰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털어놨다. 생각만큼 전력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특히 공격수 부재에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 팀은 골이 안 나온다. 딱 하면 떠오르는 공격수가 없다. 외국인 선수도 골을 넣는 선수들이 아니다"면서 "나도 닥치고 공격(닥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은 7일 대구와의 35라운드를 치른 뒤 휴식기에 맞춤형 체력훈련과 연습경기 등을 통해 전력을 끌어올린다. 하 감독은 "머리가 아파 조금의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반타작은 해야할텐데 안갯속이다. 매 경기가 결승전이다"면서 남은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감추지 못했다.
◇ 14위 최만희 감독 "운명 좌우하는 감독, 스트레스 극심"
3일 열린 대전전에서 1-1로 비긴 뒤 최만희(56) 광주 감독은 크게 아쉬워했다. 최 감독은 "이 경기는 어떻게든 이겨야 했고,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우세한 경기를 펼쳤는데 이기지 못해서 너무 아까웠다"고 말했다. 광주는 하위 리그 4경기 중 3경기나 선제골을 넣고도 동점골을 내줘 승점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지시를 해도 막상 그라운드에서 잘 이뤄지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조급한 것이 경기에 나타나서 원하는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유쾌하고 다정다감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최 감독이지만 성적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는 "죽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이 볼 땐 좋게 보이겠지만 팀의 운명이 걸린 만큼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다"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일부러 운동을 한다.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때 뛰고, 저녁에는 혼자 헬스장을 찾아 몸을 풀면서 마음을 달랜다"고 말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죽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최 감독은 "죽을 만큼 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남은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하면 팬들앞에 선보일 공약에 대해서도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남는게 중요하다. 그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전 몰수승으로 17일동안 휴식기를 갖는 광주는 8일부터 목포축구센터에서 전지훈련을 한다. 최 감독은 "많은 걸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목포에서 선수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호흡하며 남은 경기를 대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15위 김학범 감독 "추석 때 송편 구경도 못해. 담배만 늘어"
지난 7월 강원FC 감독에 부임한 김학범(52) 감독은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고 한탄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담배가 늘었다. 하루에 3갑을 피고, 경기 하프타임 때도 핀다고 털어놨다. 담배량이 늘어 술은 입에 대지 않는다는 김 감독은 "술까지 마시면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럴 만 했다. 강원은 김 감독 부임 후에도 좀처럼 경기력이 나아지지 않았다. 9경기 연속 무승도 기록했고, 7연패나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시즌 중간에 팀을 맡아 일으켜세우겠다는 포부는 흔들렸고, 순위는 강등권인 15위에서 올라서지 못했다. 급기야 구단 대표이사가 사퇴의사를 밝히고, 선수단 월급이 지급되지 않는 등 어수선한 일도 많았다. 추석연휴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한 훈련과 경기 준비 때문에 송편 구경도 못했다.
김 감독은 남은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를 강조했다. "마지막 경기까지 가봐야 결론이 날 것 같다. 앞으로 몇 경기 더 이겨야 강등 탈출한다는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강등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지금은 오직 다음 경기 승리만 생각한다. 무조건 이기는 것만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그래도 현재의 팀 분위기에 만족했다. "아주 좋다. 분위기까지 가라앉으면 큰일인데 선수들이 알아서 참 열심히 해주고 있다"고 했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도 응원하는 서포터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는 지난달 말, 클럽하우스를 찾아 깜짝 촛불 응원을 펼쳤다. 김 감독은 "촛불 응원에 감동받았다. 어느 서포터스가 그렇게 해주겠나.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