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 시간동안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연기파 배우들이 스크린과 안방극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종영한 드라마 '골든타임'의 이성민과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열연한 이희준이 대표적인 인물. 특히 이들이 유명 극단 차이무(차원이동무대의 줄임말) 출신 선후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통극단 출신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수년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려온 뮤지컬과 달리 연극은 여전히 '상업적' 또는 '대중적'이라는 말과 거리가 먼게 현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극무대에 올라 연기혼을 태웠던 극단 출신 배우들은 누가 있을까.
▶이성민·이희준은 극단 차이무, 송새벽은 연우무대 출신
이성민은 지난 8일 방송된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해 연극배우 시절의 고생담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연극 전단지를 붙이고 몇 푼 안 되는 출연료를 받아 힘들게 가정을 꾸리면서 25년간 배우의 길을 걸어온 고달픈 인생사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던 것. 대개 연극배우 생활을 오래 했던 이들로부터 흔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인데도 유독 드라마틱한 내용과 특유의 입담 때문에 새삼 화제가 됐다. 어지간한 기업 CEO의 성공담만큼 대중의 구미를 끄는 매력이 있었다는 평가. 동시에 대구에서 연극을 시작한 이성민이 서울로 올라와 몸 담은 극단이 차이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시 저력있는 극단 출신은 다르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극단 차이무는 1995년 창단해 올해로 17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95년 당시 첫번째 작품 '플레이 랜드'를 선보였다. 당시 이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가 문성근과 송강호다. 이듬해에는 히트작 '늙은 도둑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고 고 박광정과 유오성이 주인공을 맡았다. 강신일·정은표·박원상도 차이무 출신이다. 대구에 살던 이희준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연극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차이무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2010년 각 시상식을 돌며 신인상을 휩쓸었던 배우 송새벽도 알아주는 연극배우였다. 그가 몸 담았던 곳은 극단 연우무대. 1977년 '창작극만 공연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35년 전통의 극단이다. 앞서 설명한 차이무가 연우무대에서 갈라져나온 극단이다. '장산곶매' '칠수와 만수' '날 보러와요' '이'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연우무대의 공연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배우는 김윤석과 안석환·김뢰하·김여진 등이다.
▶설경구 황정민 극단 학전출신 스타
설경구와 조승우도 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기본기를 닦았다. 이들이 소속됐던 단체는 극단 학전.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을 개관하면서 출발했다. 정통 극단 연우무대에서 파생됐으며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박정자가 출연한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어멈'등으로 유명하다. 설경구와 조승우를 비롯해 김윤석·황정민·장현성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타들을 배출해 공연계 뿐 아니라 방송·영화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장현성은 지난 5월 한 토크쇼에 출연해 "설경구는 공연을 앞두고 자신의 몸에 생긴 결석을 빼내기 위해 미친듯 맥주를 마셨을 정도로 독한 배우"라고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박해일과 윤제문은 극단 골목길 출신이다. 극단 골목길은 1999년 창단이래 '청춘예찬' '쥐'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과 드라마 '유령'으로 스타덤에 오른 곽도원도 오랜기간 무대에서 활동했다. 오달수·조영진 등이 소속됐던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이다. 또한, 성동일·오광록과 기주봉은 76극단에서, 이문식·안내상은 한양레퍼토리의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다. 최근 충무로와 방송계를 누비며 '가장 바쁜 배우'가 된 조성하도 오랜기간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던 배우다. '더킹 투하츠' 등으로 알려진 정만식도 빼놓을 수 없는 극단출신 배우다.
연극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릴 수가 없다. 어쩔수 없이 소속 배우들도 배고픈 생활을 해야만한다. 반면에 전통있는 극단일수록 기강이 세고 연습도 철저하게 시킨다. 그럼에도 배우들이 극단에 몸을 담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만큼 연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 노력과 고생의 댓가가 좋은 결실이 돼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성공한 극단 출신 배우들도 소주 한잔에 눈물을 안주 삼아 마시던 그 시절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