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상(27·SK)은 몇 차례나 그 장면을 떠올렸다. 지난 24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KS) 1차전 1회말 1사 1루. 윤희상은 시속 128㎞짜리 포크볼을 던지다 이승엽(36·삼성)에게 좌월 투런포를 허용했다. 윤희상은 이날 8이닝 5피안타 3실점의 호투를 펼치고도 완투패했다. 이승엽에게 내준 홈런이 패배를 안겼다.
2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난 윤희상은 "이승엽 선배께서 정말 잘 치셨더라요. 당시에는 '공이 가운데로 몰렸나'라고 생각했는데, 녹화된 화면을 보니 높긴 했어도 바깥쪽으로 흘렀어요"고 떠올렸다. 실투가 아닌 공을, 이승엽이 밀어서 홈런을 쳤다는 의미다. 윤희상으로서는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윤희상을 씩 웃었다. "(2004년) 입단할 때만 해도 저는 '윤희상은 정말 잘 던지는 투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타자들에게 맞아가면서 '아, 나는 안되는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이승엽 선배의 홈런도 그렇게 생각하죠. '자신있게 던져도 맞는다. 더 좋은 공을 던지자'고요."
윤희상은 31일 잠실에서 열리는 KS 5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이승엽과 재대결한다. 각오는 그대로다. 윤희상은 "1차전 1회에 홈런을 맞은 뒤 '이승엽 선배를 정말 잡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고의사구와 볼넷이 이어졌고 7회 한 타석만 삼진을 잡았다"고 또렷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윤희상은 차분해졌다. 그는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잡겠다'보다는 '맞지 않겠다'라는 각오가 앞선다. 나는 부족한 투수다. 섣불리 잡으러 들어갔다가 또 돌이킬 수 없는 한 방을 내줄 수 있다"고 밝혔다.
KS에서 마음껏 던지지 못했던 지난해와, 투수를 포기하려 했던 과거가 윤희상에게 더 큰 힘을 안긴다. 윤희상은 지난해 KS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손톱에 문제가 생겨 1이닝(1피안타 무실점)만 던진 채 강판됐다. "올해는 두 번이나 선발 등판한다"고 감격해하는 이유다. 그는 2006년 6월 어깨 수술을 받았다. "같은 상황이 오면 수술을 하지 않겠다. 그냥 재활만 하겠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윤희상은 "수술 뒤 계속 팔이 아파 야구를 그만두거나 타자로 전향할 생각도 해봤다. 그때는 야구보다 낚시를 더 많이 했다"며 웃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2012년 가을이다. 윤희상은 "팀이 2패 후 2승을 거두지 않았나. 나도 1패를 했으니 1승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윤희상은 정규시즌에서 삼성에 1승1패 평균자책점 0.99로 무척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