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보석이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네번째 작품 '멸滅'에 출연한다. 4일부터 18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는 '멸'은 삼국유사 중 김부대왕을 모티프로 한다. 신라의 멸망과 삼국유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 특히 신라 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등장인물의 의식주와 말투 등 생활문화는 현대적으로 해석해 눈길을 끈다.
정보석은 MBC 주말극 '무신'을 끝내고 '멸'에 합류했다. 한동안 드라마와 영화 등에 전념했던 정보석이 다시 본격적인 연극활동을 시작한건 2008년 '클로저'를 통해서다. 이후 현재까지 드라마와 연극을 병행하며 연기파 배우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드라마 한 편을 끝낼때마다 연극에 출연하는 이유가 있나.
"갈수록 연기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돌아가는 드라마 현장에만 있기보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하나의 캐릭터를 깊이있게 파고들수 있는 연극을 하면서 내 스스로 학습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무대에 섰을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해서다.(웃음)"
-베테랑이라 무대가 집처럼 편안할 것 같다.
"아니다. 공연 1주일 정도를 앞두면 말도 못할만큼 불안해진다. 심지어 무대에 안 올라가도 되는 상황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대사를 까먹는 등 실수하는 꿈도 꾼다. 간혹 꿈속에서 관객들이 내게 야유를 보내며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실수를 한 적이 있나.
"있다. 사실 완벽하게 공연하는 날은 한번도 없을거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매번 조금씩 어긋난다. 하지만 프로페셔널이라면 실수를 하더라도 관객이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야한다. 실수를 해서 관객까지 당황하게 만든다면 그건 아마추어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거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삼국유사의 한 부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그 상상력이 굉장했다. 역사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굉장히 재치있는 발상을 했다는 점이 끌렸다. 희곡을 보고 있으면 당시 국가간에도 치열한 외교전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 역시 멋지다. 도저히 거부할수 없는 작품이었다."
-신예 김태형 작가가 베테랑 연기자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맞다. 나도 굉장한 이력을 가진 작가인줄 알았더니 신인이라고 해 많이 놀랐다. 우리 연극 대본을 읽고 난 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봤는데 그 작품에도 역사위에 발칙한 상상을 더했더라. 하지만, 우리 연극은 '광해'보다도 더 엄청난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영화적인 장면도 많아 나중에 시나리오로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정보석의 참여로 더 많은 관객이 몰린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다. 일단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의 연간 프로젝트 일환이라 공연 기간도 길지 않다. 아직 표가 남긴 했는데 혹시나 떨어질까봐 사비로 초대권을 확보하고있다.(웃음)"
-공연준비하다보면 자연스레 술자리도 많아질텐데.
"하루 연습시간이 8시간 이상이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술을 안 마실 수 없다. 동료들끼리 하고싶은 이야기들이 자꾸 생기는데 그걸 맹숭하게 극장에 앉아서 나눌수 있나. 어제도 장충동 족발집에 가서 새벽 1시 30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성민과 이희준 등 극단 출신 배우들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본다. 과거에는 각 방송사에서 배우를 뽑아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이젠 그런 루트도 없다. 그러다보니 영화나 드라마 관계자들이 연극 쪽에서 배우를 찾아내려 움직이게 된다. 실전 경험이 있고 트레이닝이 잘 돼있는 배우의 연기가 설득력을 가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얼마전 '아랑사또전' 카메오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내 마음이 들리니'의 김상호 감독이 그 작품을 연출했다. 부탁도 있었고 마침 '아랑사또전'을 즐겨보고 있어 흔쾌히 승락했다. 강한 인상을 남길수 있을만큼 재미있게 해보려했는데 특별출연한 드라마 '못난이 송편' 촬영과 겹쳐 충분히 집중하질 못했다. 아쉽다."
-'왕따'문제를 다룬 '못난이송편' 출연으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특집극이라 한번 전파를 타고 끝났지만 앞으로 교재로 만들어 학교에 보냈으면 좋겠다.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이 모두 봐야할 작품이다."
-연극을 어렵게 생각하는 예비관객에게 한마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극이 잠시나마 그런 시간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공연에 빠져있다보면 마음도 차분해질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