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원달러 환율 1100원선이 무너진 이후 원화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원화강세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화강세는 수출로 돈을 벌어들이는 대다수 우리 기업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생산원가가 똑같다면 달러로 표시된 수출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8일 발표한 '최근 환율 급등에 따른 업종별 피해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수출기업들의 수출 마진 확보를 위한 환율 마지노선은 1086.2원이다. 하지만 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085.4원으로 환율 마지노선 밑으로 하락했다. 사실상 상당수의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는 지난 2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 기아차 현대차 현대모비스 고려아연 현대미포조선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환율하락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반면 원화강세에 남몰래 웃음을 흘리는 기업들도 있다. 항공, 여행, 음식료, 에너지 관련 업종에 속한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원자재를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구입비용이 낮아지면서 순이익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료 업체들은 대표적인 환율하락 수혜주다. 원자재를 싸게 들여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CJ제일제당, 대상, 삼양사, 대한제품, 오리온, 빙그레 등이 환율하락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은 음식료 업체들이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음식료 관련주의 경우 원재료 수입액이 완제품 수출액보다 많은 상황이어서 원화 강세는 필연적으로 영업이익 개선을 가져와 주가 상승의 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CJ제일제당은 관계자는“환율이 10원 내린다는 가정하에, 연간기준 환산시 대략 30억원의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관련기업들도 원료인 석유 등을 해외에서 주로 수입하고 있는 데다 외화표시 부채가 많기 때문에 원화 강세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다.
유덕상 동부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은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연료비 개선 1980억원, 외환차익 90억원, 환산이익 520억원 등 총 2590억원의 세전이익이 개선된다”며 “내년에 환율이 1100원으로 유지되더라도 9000억원이 넘는 이익 개선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사들도 원·달러 환율 하락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은 업종이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항공기를 구입할 때 외화 차입에 의존한다. 환율이 하락할수록 원화로 환산한 차입금액이 줄어 앉아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상반기 말 기준 대한항공의 순외화차입금은 환율 1100원 가정 시 8조원에 이른다.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대한항공은 800억원 이익인 셈이다. 또 연료비의 약 40%를 외화차입을 통해 지불하는데, 원화 가치가 높아질수록 비용이 줄어든다. 환율 하락으로 여행경비 부담이 낮아져 해외 관광이 증가할 경우에도 항공사들의 실적 증가를 기대해볼 수 있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원화 가치가 1%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대한항공의 주당순이익(EPS)이 8.3%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해운사도 항공사와 마찬가지로 원화강세가 반갑다. 해운업체는 선박을 들여올 때 대규모 외화 부채를 진다. 원화가 절상되면 이런 외화 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원화가치가 50원 오르면 한진해운의 순이익은 70.5%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여행사들도 환율 하락이 반가운 업체들이다. 환율하락으로 인해 해외여행 경비가 상대적으로 싸지면서 연말 해외여행객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월, 12월 하나투어의 패키지 예약자수는 지난해 대비 각각 18.3%, 19.6%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