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41)이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김성근(71) 감독이 이끄는 고양은 지난 17일 제주 서귀포 강창학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시작했다. 이상훈은 훈련 첫날부터 팀 스케줄을 온전히 소화하며 고양 투수코치로서 '인생 2막'의 닻을 올렸다.
소문과 달랐다. 헝클어진 긴 헤어 스타일 대신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이 있어야 할 자리도 말끔했다. 턱에는 방금 다듬은 듯 파르스름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모자와 머리카락이 걷힌 그의 얼굴선은 동그랬다. 사납게 비쳐졌던 눈꼬리는 선하게 내려와 있었다. 그에게 "착하게 생겼다. 주변에서 '이상훈은 성격과 외모가 거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자 잔잔한 미소가 되돌아왔다. '야생마' 이상훈을 18일 제주도에서 만났다. 그는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문과 달리 순한 인상이다.
"날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자른지 좀 됐고, 턱수염은 어제(17일) 잘랐다."
(김성근 감독은 "이상훈이 17일 첫 미팅에서 수염을 기르고 왔더라. '야, 그거 뭐냐'고 했더니 깨끗하게 자르고 왔다. 겉은 거칠어도 마음이 착하고 곱다"고 했다.)
-2010년 4월5일 이전과 이후 어떻게 지냈나.
(당시 이상훈은 LG 구단 게시판에 "팀에서 '이상훈과 LG다운 팀을 만들고 싶다. 도와 달라'며 지도자 제의를 해와 신변을 정리했으나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2004년 은퇴한 후 세상과 단절돼 살았다고 아시는 분들이 있다. '단절'보다는 어떤 일이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왔다. 나는 하던 일을 선뜻 그만두거나 바꾸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LG에서 지도자 제의를 받고 주변 정리를 했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하는 일들이 없어졌다. 이후 하남시에 야구교실을 열어 사회인들을 지도했고, 중학교에서 인스트럭터도 하며 야구와 인연을 이어왔다."
-지도자로 새출발하게 된 계기는.
"김성근 감독님께서 작년에 직접 '코치를 맡아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열심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시작했다가 제대로 못하면 팀에 피해가 간다. 야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변 정리를 하며 시기를 봤다."
-이상훈에게 고양은 어떤 팀인가.
"분명히 말하건대, 이 인터뷰는 고양과 계약한 후 처음이다. 팀에는 감독님이 계시고, 수석코치 등 많은 코칭스태프가 있다. 나는 고양이 단순한 실업팀이 아니라, 존재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선수들을 프로에 보내는 등 무게가 있는 팀이다. '과거에 내가 이런 선수였다'며 나서고 싶지 않은 이유다. 코칭스태프 중 내가 막내다. 선·후배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야구라는 이름 아래, 고양을 알아가야 하는 시기다."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다른 이들은 달리 보는 듯하다. LG에서도 그랬다. 2004년 1월 트레이드 전 (이순철) 감독과 싸운 적 없다. 난 그저 가만히만 있었다. 나중에 참지 못해서 터졌던 것도, 사실 나 자신이 마음을 내려놨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가지 못하는 건,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나를 해명하는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나 또한 바라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과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서울고 재학 시절 처음 만났다. 당시 감독님은 OB를 이끌고 계셨는데, 서울고로 훈련을 오시곤 했다. 고3 때는 OB의 창원 전지훈련에 투수들과 포수 한 명을 데려가 프로팀과 같은 스케줄로 조련했다. 그 중 한 명이 나다.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다.(웃음) 내가 피칭할 때 늘 곁에서 지켜봐 주시던 기억이 난다."
-2002년 국내에 복귀해 김성근 감독과 LG에서 만났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다.
"당시 '야생마'에 머리카락도 긴 저런 놈이 김성근 감독님과 맞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잘못을 지적 받으면 '예' 하고 시정하고, 나가서 공을 던지라고 하면 전날 몇 이닝을 던졌건 상관없이 마운드에 오르면 된다. 야구 열심히 하고, 외부 사고 안 치면 됐고, 관계도 좋았다."
-그러나 구단과 문제가 많은 것처럼 비쳐졌다.
"세상은 내가 선수협을 만들기 위해 돌아다니고 구단과 마찰을 빚는다고 했다. 돈 따라 해외진출을 선택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식으로 이미지가 박혔다. 나는 LG와 문제 없었다. 구단에 말한 것을 지켜달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일개 선수가 구단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이상훈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주로 LG 팬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 시간이 흘러 '그땐 그랬지' 하듯이 옛날 일은 추억이 됐으면 한다. 팬들은 아직도 과거를 회상한다. 1990년대는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했고, 2002년에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준우승을 일궈냈다. 이후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성적이든 어떤 훌륭한 모습이건 LG의 팀 색깔이 쌓여 왔다면 옛날 일은 다 추억이 됐을 텐데…. 감동이 적다 보니 팬들은 자꾸 옛일을 반추하며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신다. 꼭 좋은 성적이 아닐지라도 감동이 있으면 된다. 다 알고 있는데 왜 잘 안되나 모르겠다.(웃음) 이런 말을 하면 나에게 도움되는 것이 없다는 걸 안다. 원뜻과 달리 왜곡돼 보일 수도 있단 걸 안다. 구단이나 팀이 아닌 팬들께 드리는 이야기란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야구선수 이상훈은 LG와 함께 울고 웃은 세월이 길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LG를 향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고양에서 첫 훈련이었다. 소감은.
"오늘 '노가다(막일)' 많이 했다. 강창학구장에 투구판만 4개 정도 된다. 비가 오면서 마운드가 다 무너져 아침부터 다시 정리하는 데 시간을 썼다.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에 식사를 한 후 줄곧 훈련을 했다. 야구교실을 할 때는 다른 이의 공을 모두 내가 받았다. 포수 무장도 하고, 왼손용 미트도 5개나 갖고 있었다. 지금은 미트 대신 수첩을 들고 선수 이름과 등번호, 피칭 내용과 스케줄을 기록한다. 저녁 밥을 먹고는 미팅하고 야간 훈련을 해야 한다."
(그는 오전·오후 훈련 내용을 줄줄이 읊었다. 야구 이야기를 할 때는 표정이 밝았다)
-행복하게 보냈나.
"행복을 굳이 말로 해야 하나.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거다. 정식 팀에서 코치는 처음이다. 고양도 프런트와 구단주가 있지만, 김성근 감독님의 지휘 아래 움직인다. 코치의 첫 시작을 고양에서 할 수 있어 좋다. 어제(17일) 감독님께 '저 같은 놈을 받아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꿈은.
"없다. 오늘을 잘 살아내지 않으면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훗날,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내가 고양 코치로 있게 된다면 팬들에게 '이상훈은 어떤 코치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