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영화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리뷰입니다. 충무로 최고의 '흥행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강우석 감독(52)인데요.
너무나 잘 알려진 '국가대표급' 감독이죠. 히트작 꼽아봅니다. '투캅스 1,2,3'(93~98) '실미도'(03) '공공의 적 1,2'(02·05) '이끼'(10) 등등. 1989년 '달콤한 신부들'로 연출 데뷔해 23년동안 연출작만 20편이 넘고요. 기획·제작·투자한 작품까지 더하면 한국영화역사에서 강우석이란 이름을 빼고 충무로를 논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되겠죠.
강감독을 지난 10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만남 이후 오랜만이었습니다. 기분 좋게 소고기 구워먹으면서 몇몇 기자들과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자리였어요.(강감독은 1~2년에 한번씩 기자들과 스킨십의 시간을 갖습니다. 요즘 같은 때 참 보기 드문 에너지의 소유자죠. 늘 1차 이후 사라지지만 "사랑합시다"라는 그의 건배사를 외치다보면 동문회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이날도 "사랑합시다"를 연거푸 외치다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영화 얘기로 넘어갔습니다. 물론 강감독이 그동안 촬영해온 새 영화 '전설의 주먹'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전설의 주먹'은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한 액션물입니다. 고교동창생들이 리얼 격투기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만에 다시 만나 못다한 승부를 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웹툰 연재될 때 고교시절과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황정민·유준상·윤제문·이요원 등 믿을만한 배우들이 총출동합니다.
'이끼'때 너무 개고생을 해서 다시는 웹툰 원작 영화를 안 찍겠다더니 왜 다시 웹툰이냐고 물었습니다. 직설적인 그의 성격답게 답은 간단했습니다. "제목이 좋아서"였습니다.
"제목이 너무 좋잖아… 전설… 웹툰 원작 힘들었지만 이거 제목 보고 반했어. 제작만 하고 감독은 다른 사람 찾아볼까 하다가 직접 하기로 했지. 1989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도 그랬었거든. 이런 제목이 어디 또 나오겠냐고. 그래서 했어. 두고봐. 괜찮을 거야"
특유의 자신감이 엿보였습니다. 이게 바로 강감독의 장점입니다. 최근 '이끼'와 '글러브'에서 흥행성적이 다소 기대에 못미쳤으나 굴하지 않는거죠.
심지어는 큰소리도 쳤습니다. 이제 막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 중인데 벌써 개봉 일자를 정했다는 겁니다. 내년 4월 10일. 요즘엔 투자·배급사들의 '간보기' 라인업이 심해서 개봉 일정이 수시로 변하거든요. 그런데 개봉 4개월 전에 이미 날짜를 '픽스(fix)'했다는 거죠. 배급을 맡은 CJ측과는 아직 상의도 안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더 공격적이었습니다. 4월 말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3'가 개봉하는데 그걸 잡겠답니다. 이건 무슨 막가파식 배짱도 아니고 리얼 진심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이 이유를 알겁니다. 내년 여름영화엔 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 공세를 막아줄테니 그전에 4~5월엔 내가 할게요. 영화 좋으면 밀어주세요. 아니면 혹독하게 비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자신있어요."
비록 술자리였으나 강감독의 호언장담이 결코 허장성세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20여년의 내공에서 나오는 도전정신이 숭고함마저 자아냈습니다.
한국영화 연간 1억명 관객시대입니다. 아무리 한국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노장감독의 '큰소리'가 참 반갑습니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무모해보일지라도 승부를 거는 자신감, 그리고 젊은피 못지 않은 열정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