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김성근(70) 감독과 '야생마' 이상훈(41) 코치 사이에서 '왼손 사이드암' 이상훈(27)이 자란다. 고양 원더스가 선보일 '2013년 작품' 중 하나다.
이상훈은 지난 10월4일 SK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 동안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이상훈은 옛 스승 김성근 감독을 떠올렸다. "감독님,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긴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짐 싸서, 바로 고양으로 와라." 이상훈의 원더스 생활이 시작됐다.
11월5일, 이상훈은 깜짝 놀랐다. 이름까지 같아 더 닮고 싶었던 '우상' 이상훈이 고양 코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상훈은 18일 "내 또래 왼손 투수들이 다 그렇지 않나. 이상훈 코치님의 경기를 보면서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2008년 SK에 입단했을 때 제춘모(SK) 형을 통해 이 코치님과 통화한 적이 있다. '선배님, 정말 닮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래, 시간 내서 한 번 보자'고 하셨다. 그런데 이곳에서 코치와 선수로 만나게 됐다"고 신기해했다.
김성근 "장점이 있다. 해보자"
이상훈은 2008년 단국대를 졸업하고 2차 3라운드(전체 19번) 지명으로 SK에 입단했다. 2012년 10월 방출될 때까지 1군 경기 등판은 단 한 차례뿐. 2009~2010년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2011년 1경기에 나서 두 타자를 상대로 ⅓이닝 1사구 무실점으로 홀드를 따냈다. 하지만 '왼손'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2007년부터 2011년 8월까지 SK 사령탑으로 있던 김성근 감독은 "언젠가는 1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상훈은 "1군에서 뛰지 못했지만 감독님을 자주 뵀다. 감독님께서 SK 시절 2군에 자주 오시지 않았나. 내 투구 자세를 보고, 조언을 해주신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년 2개월 만에 김 감독을 다시 만난 이상훈은 달라져 있었다. 어깨 통증을 앓은 그는 지난 8월 사이드암으로 변신했다. "두산 김창훈처럼 희소성 있는 투수가 돼 프로에서 살아남겠다"는 계산을 했다. 이상훈은 왼손 사이드암으로 바꾼 뒤 퓨처스(2군)리그에서 6경기에 등판해 5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이상훈은 "투구 동작에 적응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상훈과 재회한 김 감독은 "사이드암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해 보자"고 했다. "프로에 선발과 마무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짧게, 임팩트있게 던지는 투수도 필요하다. 지금 투구폼에 장점이 있다. 해보자"는 게 김 감독의 생각. 익숙해지기 위해 투구수를 늘렸다. 이상훈은 "프로에 있을 때는 1이닝을 겨우 채웠다. 고양에서는 평가전에서 2~3이닝씩을 던지고, 불펜 피칭 150개를 한다. 점점 자신감이 붙는다"고 했다.
이상훈 코치 "자신감부터 가져!"
이상훈 코치의 격려 또한 성장 동력이다. 이 코치는 11월17일 제주도 마무리훈련부터 고양에 합류했다. 이상훈은 "이 코치님께서 '자신 있게 던져. 네 공을 던지고 맞아야 후회가 없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릴리스포인트에서 최대한 힘을 쓸 수 있도록 자세도 잡아주셨다"고 전했다.
두 달이 조금 넘은 시간. 하지만 이상훈은 이미 고양의 분위기에 적응했다. 그는 "확실히 패기가 있다. 이곳에 있는 선수들은 끊어진 줄에 아쉬워하지 않고, 새로운 줄을 만들어간다. 왜 열심히 해야하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훈련이 힘들지 않다. 즐겁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