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스타 류시원(40)은 잊어달라.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연예인 류시원이 아니라 자동차 경주의 드라이버 류시원이다.
기자는 류시원이 재미삼아 자동차 레이싱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예인이라는 걸 앞세워 잘도 모터 레이싱을 하고 있군’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렇게 쉽게 드라이버가 되는 걸 보면, 모터레이싱에 인생을 걸고 있는 진짜 모터레이싱 종사자들이 섭섭한 부분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에는 류시원은 ‘진짜’ 모터레이싱 선수는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기자가 이런 생각을 바꾼 건 이달 초에 열린 CJ 슈퍼레이스 시상식에서였다. 십대부터 미캐닉을 거쳐 정상급 드라이버로 올라선 베테랑 드라이버 류경욱(팀106)과 촉망받는 신예 드라이버 윤광수(SL모터스)가 챔피언컵을 받은 뒤 한결같이 류시원에게 정중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생각해보니 류시원이 모터레이싱과 인연을 맺은지 벌써 17년이다. TV 예능프로를 찍으며 처음 레이싱카를 몰아본 게 1996년이다. 1997년에는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카 레이싱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연예인 활동이 너무 바빠서 약 4~5년간 레이싱에서 멀어진 적도 있지만 2003년 다시 모터레이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9년에는 직접 레이싱 팀을 만들었다. 창단 후 4년이 지난 지금, 그가 만든 ‘팀 106’은 한국 모터레이싱에서 가장 다이나믹하게 성장하는 신흥 명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17일 한국자동차경주협회가 주최한 시상식에서 팀 106은 올해의 레이싱 팀으로 뽑혔다. 18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팀 106의 베이스캠프에서 선수, 감독, 팀 대표로 1인3역을 하고 있는 류시원을 만났다.
◇내가 달리는 이유
-처음에는 이렇게 진지하게 모터레이싱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시선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연예인이니까, 그럴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너무너무 듣기 싫었어요.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죽기 살기로 더 열심히 했죠."
-레이싱이 왜 좋은가요.
"여자 좋아하세요. 저한테는 모터 레이싱이 그래요. 저도 제가 왜 모터레이싱을 좋아하는 지 모르겠네요. 저는 레이싱 서킷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태백이나 영암에서 레이싱 경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다음 경기가 열리는 한 달 후까지 어떻게 기다리나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서 보내는 시간도 즐겁지만, 모터레이싱을 할 때는 온전히 저한테 몰두하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좀 유치한 질문을 던졌다.
-드라이버 활동을 하고 있는 래퍼 김진표와 겨루면 누가 빠른가요.
“글쎄요. 올해 성적만 보면 진표가 더 좋았죠. 하지만 저는 올해 감독과 팀 대표를 겸직하느라 레이싱에 전념을 할 수 없었죠. 진표에게 레이싱을 해보라고 권유한 사람이 저입니다. 예전에는 제 상대가 안됐죠. 지금 진표는 쉐보레 팀에서 이재우 감독 등으로부터 착실히 배우면서 기량이 많이 늘었습니다. 다음 시즌에 좀 더 레이싱에 관심을 쓸 예정입니다. 두 번에 한 번 정도는 시상대에 올라가는 게 목표입니다. 진표도 꼭 눌러야죠.”
◇모터레이싱에 새로운 인생을 건다
-레이싱이 좋으면 레이싱만 하지, 왜 직접 팀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나요.
“요즘도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삼아서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치매가 걸리기 전까지는 직접 레이싱을 하고 싶다고. 레이싱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 팀은 타이어 비용만 1년에 억대가 넘어갑니다. 원래 이세창 감독이 이끄는 연예인 레이싱팀 알 스타즈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하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팀 106을 대한민국 최고의 팀으로 만드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나중에 죽었을 때 연예인 류시원이 아니라 한국 모터레이싱의 발전에 류시원이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류시원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벌써 한국 모터레이싱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팀106은 신인 드라이버 육성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넥센 9000대회에서 우승한 윤광수가 팀 106 슈퍼 루키 발굴 프로젝트로 탄생한 드라이버다. 류시원은 “드라이버는 물론 미캐닉을 양성하고 취직까지 시켜주는 레이싱 스쿨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직접 팀을 운영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아니라 쌓이는 일도 많지 않나요.
“하하. 레이싱팀을 사무소가 서울과 용인에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마케팅 관련 일을 하고, 용인에는 미캐닉이 경주용 차를 손봅니다. 양쪽을 오가며 회의를 하다보면 제가 연예인이 아니라 무슨 회사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레이싱 쪽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니까, 연예 매니지먼트를 맡은 곳에서는 항의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즐겁습니다.”
◇레이싱에서 황금알을 캔다
올해 류시원은 헬로모바일 슈퍼레이스 5전에서 3위에 올라 1번 시상대에 올라갔다. 그는 직접 차를 모는 드라이버로서의 능력보다는 감독이나 팀 대표로 보여준 퍼포먼스가 더 뛰어났다. 류시원은 “레이싱팀을 운영하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류시원의 말처럼 팀106는 우승을 휩쓰는 팀이다.
-올해의 레이싱팀으로 뽑힌 것 축하합니다.
“1999년 창단 첫해에는 ‘올해는 팀을 안정화시키고 성적은 내년부터 내자’고 다짐했습니다. 창단한지 2년 만에 3800cc 제네시스 쿠페 원메이크 레이스(동일한 차종으로 경쟁하는 대회)에서 장순호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 번 우승으로는 부족합니다. 우승이 우연이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하니까요. 지난해에는 같은 대회에서 류경욱 선수가 우승하고 최고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어디에 도전할까 고민하다가 2000cc 클래스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일 차종으로 경쟁하는 3800cc 대회와 달리 2000cc GT는 현대차, 쉐보레 등 각기 다른 자동차 회사의 차량이 출전해 자존심을 겨루는 대회입니다. 이 대회에서 쉐보레가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있었죠. 올해 초에 팀원을 불러놓고 2012년에는 무조건 2000cc 우승이 목표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우승했습니다. 우리 팀이 시작한 첫 해에 쉐보레의 6연패를 저지하고 챔피언이 된 거죠.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팀을 운영비를 지원하는 스폰서도 탄탄하다. 의류업체 EXR과 협력사업이 대성공을 거둔 덕분이다. EXR에서는 팀 106의 유니폼 등을 판매해 4년간 3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팀 106을 의류업체 EXR에서 운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푸마에서 자동차 팀 페라리의 의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컨셉트죠. 그냥 이름만 빌려주는 건 아닙니다. 내가 승인하지 않은 디자인의 제품은 만들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를 충분히 존중하지만 우리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죠.”
-그렇게 잘 팔리면 다른 의류업체에서도 하고 싶어하겠군요.
“어디서 돈을 조금 더 준다고 우리를 처음부터 지원해준 EXR과 거래를 끊는 식으로 팀을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가 독자적으로 의류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시작할 때 목적은 연예인이 아닐 드라이버 류시원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다보니 드라이버 류시원이 아니라 경영자 류시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레이싱 팀을 운영하는 게 수익을 내기 위해서인가.
“아닙니다. 좋은 레이싱팀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수익을 바라보고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익도 중요한 부분이다. 산업으로도 발전해야 모터레이싱만 해도 드라이버와 미캐닉이 모두 잘 살 수 있다. 모터레이싱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모터레이싱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최근 겪고 있는 사생활, 이혼과 관련해 질문했다.
류시원은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요. 터무니없는 오해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딸입니다. 딸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이혼에 합의하지는 않았으며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양 측이 모두 딸에 대한 양육권을 원하고 있다.
용인=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co.kr] 사진=이영목 기자 · 팀 106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