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는 4일 호주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두 번째 경기에 2번타자·2루수로 선발 출장해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네덜란드전 4타수 무안타에 이은 극심한 부진이다. 이날 6-0으로 호주를 잡고 기사회생한 대표팀이지만 1번 이용규(28·KIA)가 2안타, 3번 이승엽(37·삼성)과 4번 이대호(31·오릭스)가 각각 3안타를 때려내 2번 정근우의 활약 여부에 따라 더 큰 점수차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정근우는 2사 만루 상황에서 들어선 8회 마지막 타석에서도 좌익수 플라이로 아웃되며 고개를 떨궜다.
정근우는 이번 WBC에서 테이블세터(1·2번타자)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9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 동안 타석당 2.7개의 투구를 보는데 그쳤다. 6타석이 2구 이내의 승부였고, 5구까지 간 경우도 두 번에 그쳤다. 호주전 다섯 번의 타석에선 모두 2구 이내 타구하며 성급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타격감을 고려하면 좀 더 많은 공을 보면서 투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정근우는 대회 개막 전에 갖은 6번의 연습경기에서도 20타수 2안타에 그쳤다. 삼진은 없었지만 볼넷도 하나 없이 타율이 딱 1할이었다. 본 대회 성적까지 대입하면 29타수 2안타(타율 0.068) 빈타다. 국제대회 개인통산 타율이 0.330(176타수 58안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부진이다. 이번 대회 9번의 타격 중 내야를 벗어난 타구가 단 하나(호주전 마지막 타석)였다.
예상치 못한 고전. 하지만 류중일(50) 대표팀 감독은 정근우를 굳게 믿고 있다. 무엇보다 대신할 수 있는 2루수 자원이 없다. 마찬가지로 부진한 유격수 강정호(26·넥센)는 손시헌(33·두산)과 김상수(23·삼성), 포수 강민호(28·롯데)는 대체선수로 진갑용(39·삼성)이 있다. 반면 대표팀 야수 중 2루가 주 포지션인 선수는 정근우 뿐이다. 정근우의 부활이 절실한 이유다.
정근우는 지난해 타율 0.266으로 부진한 후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매일 밤 아파트 옥상에서 배트를 휘둘렀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담배 한 보루를 건네며 잠겨있는 옥상 문을 열고 혹독하게 자기반성을 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제몫을 다했다. 류중일 감독은 호주전이 끝난 후 '정근우를 향후 경기에 주전 2루수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전 승리는 물론 더 높은 곳을 보기 위해선 정근우의 '자기반성'을 통한 부활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