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동안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며 악보를 못 읽어 답답함을 느끼던 함광훈(오른쪽)씨가 노안 수술 후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과 함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호형 기자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미켈란젤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80대와 90대의 나이에도 타고난 건강을 바탕으로 여전히 작품 활동을 했다. 이젠 직업인들이 60대와 70대에도 건강만 유지하면 전문성과 경륜을 가지고 왕성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들이 가장 겁내는 것이 있다. 바로 50대 무렵 생기는 노안이다. 창조적 지식사회에서 글을 못 읽거나 사물을 잘 볼 수 없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박영순 압구정동 아이러브안과(www.eyeloveilove.com) 원장의 노안 수술은 이런 걱정과 불안을 말끔이 씻어낸다. 인생에서 수십 년간 한 길을 걷다가 노안 수술을 직접 경험한 깐깐한 직장인들은 노안 수술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사례1 - 함광훈씨
송파구 일신여상에서 음악교사로 32년 동안 교편을 잡은 함광훈(67)씨는 지난 2008년 정년퇴직 했다. 눈이 아주 좋다는 그의 자부심이 무너진 시점은 54세 무렵. 어느날 피아노를 치며 수업을 할 때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며 악보가 안보였다. 그는 "8분음표·16분음표는 물론 붓점까지 정확히 읽어야 하는데 그런 게 안보이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함씨는 돋보기 안경으로 노안과 맞섰다. 처음에는 안경도수가 낮았지만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또 하루는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다가 학생들을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악보와 거리감이 확 느껴졌다. 악보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혼동스러웠다. 그 때부터 집·자동차·교무실·음악실·휴대용으로 모두 5개의 돋보기 안경을 준비하고 그것에 의지해 살았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에겐 너무 낯선 일이었다.
백내장이 완벽하게 덮은 오른쪽 눈은 하얀 기름덩어리로 막을 친 듯한 느낌이었다. 라식수술을 한 중학교 수학교사인 딸의 권유로 2008년 아이러브안과에서 오른쪽 눈 한 쪽만 노안 수술을 받았다. 박영순 원장은 "이런 눈으로 차를 몰고 왔다면 무면허운전을 한 셈"이라고 함씨를 꾸짖었다. 수술 다음 날 안대를 풀고 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다. 함씨는 "수술한 쪽은 깨끗한 형광등 불빛으로 보는 것 같았다. 반면 수술을 안 한 쪽은 침침한 백열등 불빛이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걸 확인하고는 2011년 왼쪽 눈도 마저 노안 수술을 했다. 함씨가 공개한 지금의 눈 상태는 "양쪽 눈이 형광등"이다. 수술 후 깨알같은 글씨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노래방 가도 제목을 못 읽는 다른 선생님들을 위해 곡을 찾는 총무 역할 하기에 바빠졌다. 은퇴 후 매주 나가는 아코디언 동호회 활동도 자신감이 넘친다. "특히 음악하는 사람에겐 노안 수술이 필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노안 수술은 삶의 업그레이드다. 눈이 20대·30대 시절로 돌아가 생활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면서 "심지어 염색약이 눈에 흘러들어가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내가 600만불의 사나이가 된 듯한 이 만화 같은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며 웃었다.
30여 년 동안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며 악보를 못 읽어 답답함을 느끼던 함광훈(오른쪽)씨가 노안 수술 후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과 함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례2 - 이연화씨
이연화(59) 중앙대 피아노과 교수(전 부총장)는 일류 피아니스트이지만 어릴적부터 근시로 고생했다. 20년 전 라식을 받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노안과 백내장이 동시에 왔다. 무대에서 악보를 보고 즉석에서 연주해야 할 때 무척 불안하고 불편했다. 특히 무대에 서는 여자의 경우 젊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돋보기를 쓰고 연주한다는 자체가 큰 마이너스였다. 피아노를 쳐야 하니 계속 악보를 봐야 했다. 눈을 혹사하다 보니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경우가 많았다.
견딜 수 없던 이 교수는 올 설연휴 직전 왼쪽 눈을 수술했다. 그는 "난 겁이 많아 치과 스케일링 가면서도 벌벌 떠는 사람이다. 노안 수술 받기 전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너무 신기한 게(노안 수술) 생겼다. 수술이 너무 간단하고, 차분하고, 편했다"고 말했다. 노안 수술 이후 시력은 1.2가 됐다.
노안 수술은 석달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 불빛의 번짐이 조금 있다. 그래서 밤 운전은 조심하고 있다"면서 "약간씩 나아지는 걸 느낀다"고 밝혔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악보를 보고 있었다. 그는 "수술 후 악보가 아주 선명하다. 로보캅이 된 느낌"이라면서 "좋은 세상에 산다고 생각한다. 눈이 편해지면서 연주에도 자신감이 생겼고 다음번에 오른쪽 눈도 수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 원장은 "어려서부터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 피땀 흘려 결실을 맺었는데 눈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명 플루티스트 오신정씨를 비롯해 여러 음악인이 노안 수술을 예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례3 - 배진호씨
옥수동에서 20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 배진호(66)씨는 5년 전 갑작스런 노안을 맞으며 세상 사는 낙을 잃었다. 하루 3시간씩 신문을 보는 그에게 글씨를 못 읽는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검사 후 그에게 수술을 권유했다. 종합병원은 검사에만 반나절이 걸리는 등 무척 불편했다. 그는 수술 대신 다초점 안경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초점 안경만 10개가 됐다. 다초점 안경으로도 글자를 시원스럽게 읽지 못했다. 손님이 와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떨어졌다.
여기저기 알아보던 배씨는 2012년 8월 박 원장에게 왼쪽 눈만 노안 수술을 받았다. 그는 "난 다른 건 필요 없고, 신문과 책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수술에 임했다. 수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면서 "설마 이렇게까지 좋아질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수술 전에는 TV 색깔이 이상하다고 여겨 색깔 맞추는데 애 먹었다. 수술을 하고 보니까 눈이 이상했던 것이지, TV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 알게 됐다. 지난해 12월 22일 오른쪽 눈까지 수술했다. 지금은 휴대폰도 가장 작은 글씨로 설정해 놓았고, 신문에서 가장 작은 글씨도 또렷하게 본다.
배씨는 "난 사람들 보면 노안 수술을 무조건 권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면서 "나도 한 쪽 눈만 하고 견뎌보려고 했는데 나머지 눈도 그냥 둘 수 없을 정도로 수술 결과에 만족한다. 노안에 시달리는 분이라면 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수술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이호형 기자
[박영순 원장의 Q&A] 노안 수술은 영구적인가요?
Q : 노안 수술은 영구적인가요?
A : 노안 수술은 반영구적이며 평생 갑니다. '영구적'이란 의미는 무한대이니까요. 노안은 양쪽 눈에서 동시에 발생하지만 한 쪽 눈만 수술해도 효과가 좋습니다. 한 눈 노안 수술은 양안 중 우리가 평소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는 비주시안의 노화된 수정체를 제거하고 그 안에 특수렌즈를 넣는 수술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