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2군행 다음날인 14일 밤. KIA 안치홍(23)은 덤덤하게 2군행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리할 시간을 가져 보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차분하게 얘기했다.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늦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나름의 성장통. 두 발 전진을 위해 스스로 한 발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아기 호랑이의 데뷔 후 가장 험난한 시즌
안치홍은 시즌 개막후 줄곧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 12일까지 성적은 타율 0.174·0홈런·9타점.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타율이 가장 낮다. 프로 입단과 동시에 주전을 꿰차며 공수에서 맹활약 해온 그의 성적표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다.
안치홍은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폼을 다소 수정했다. 김용달 KIA 타격코치는 "파워포지션이 조금 빠르다. 공이 눈에 들어와도 땅볼성 타구가 많이 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이순철 수석코치는 "상체로만 스윙을 한다"며 부진 원인을 설명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의 믿음은 단단했다. 김용달 코치는 매번 "욕심이 많은 선수다. 스스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하곤 했다.
시즌 초반까지 팀 타선이 활발히 터지면서 그의 부진이 크게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안치홍의 고민은 컸다. 지난 6일 광주 롯데전을 앞두고 삭발까지 했다. 그는 "안 맞으니까 뭐든 해 봐야죠"라며 "너무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2010년 팀 16연패 당시 선수단 전체 삭발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는 배트를 더 힘껏 쥐었다. 이틀 연속 가장 먼저 그라운드로 나와 특타를 진행했다.
◇팀에 미안…경기 출장은 무의미
결국 지난 13일 이순철 KIA 수석코치를 찾아가 '팀에 도움이 안 되고 있다. 반전 포인트 찾는게 도움되지 않을까'라며 조심스럽게 2군행 의사를 밝혔다. 이 코치는 '코칭스태프와 상의해 보겠다'고 답했고, 선동열 KIA 감독은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회복해서 올라오는 것이 좋다"며 안치홍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2011년 6월, 허리 통증으로 1군에서 빠진 적을 제외하곤 2009년 프로 데뷔 후 첫 2군행이다.
안치홍은 기술적 부분보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더 큰 부진의 원인을 찾았다. 그는 "편하게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계속 안 맞으니 급해졌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기도 하고…"라며 아쉬워했다. 선수 입장에서 자진 2군행은 쉽지 않은 선택. 그는 "계속 안 맞는데 경기에 나가는 건 팀에 부담이다. 타선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전혀 못해줬다"며 "경기에 나가는 건 무의미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방망이가 안 맞으면 슬럼프라고 얘기했는데 그건 지금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며 데뷔 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시사했다.
비록 몸은 2군에 있지만 14일 팀의 1군 경기는 끝까지 챙겨봤다. 그는 "집에서 야구 보는데 팀원으로서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게 당연히 마음이 안 좋더라"며 "하지만 최대한 빨리 팀에 복귀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