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국내 개봉된 영화 ‘가타카(Gattaca, 에단 호크 주연)’는 유전자에 따라 인간의 서열이 정해지는 유전자 계급사회를 그려 화제가 됐다. 그런데 KRA한국마사회가 말의 유전자 평가모형을 연내에 개발하겠다고 밝혀 화제다.
KRA한국마사회는 경주마 개량성과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올해 DNA정보를 기반으로 경주마의 능력을 평가하는 ‘K-Nicks Ⅱ’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데뷔 전 경주마의 능력을 미리 점쳐볼 수 있고 씨수말이나 씨암말의 유전능력을 통해 앞으로 태어날 자마들의 능력도 가늠해볼 수 있다. 그야말로 경주마들의 ‘유전자 계급’이 실현되는 것이다. 유전자 기반의 경주마 평가는 200년 세계 경마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KRA한국마사회의 공언이 실현된다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영국 등 세계 최고의 경마선진국들도 아직까지 경주마와 씨수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수득 상금’이다. 경주에서 많이 우승하고 상금을 많이 벌어들이면 타고난 능력마로 간주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씨수말이 현역 시절 최고의 성적을 올렸지만 자식들이 형편없는 성적을 거둬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대로 유전자가 좋지 않아도 여러 가지 환경요인에 의해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사회가 개발하고 있는 DNA정보 기반의 평가모형은 이러한 환경적 요소를 제거해준다. 마사회는 지금까지 경마장·경주거리·성별·연령·함수율·기수·조교사와 같은 변수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유전능력(육종가)을 산출하는 평가모형을 개발했다. 이 모형만으로도 환경적인 요소가 많이 제거돼 비교적 정확한 유전능력을 산출했다.
하지만 마사회는 여기에 최첨단 생명과학 기술을 더해 환경적인 요인이 완벽히 제거된 유전능력을 산출하겠다는 것이다.
1994년 이후로 한국경마에 도입된 국내산 경주마들은 200m 주파기록을 매년 0.14초씩 단축해오고 있다. 이는 일본이나 브라질에 비해 7배나 빠른 개량 속도다. 한국경마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경주마들을 개량해 온 것이다. DNA기반 평가모형이 도입되면 개량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미국 등 경마 선진국들이 수 백 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를 한국은 최첨단 생명과학을 통해 단숨에 따라잡게 되는 것이다.
KRA 말산업연구소 정준용 소장은 “DNA 평가모형이 완성되면 국내 경주마 중 미래의 우수 씨수말을 선발할 수 있고, 해외의 저평가된 우수한 씨수말을 저렴한 가격에 사올 수 있어 외화 절감과 국내산 경주마의 질적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