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잠실구장에서는 고교 시절 동갑내기 '라이벌'이었던 류제국(30·LG)과 김진우(30·KIA)의 프로 첫 맞대결이 열렸다. 경기에 앞서 만난 둘은 주변의 시선이 못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김진우는 "자꾸 우리를 라이벌로 몰아간다. 나는 아무 생각없는데, 분위기 때문에 부담된다. 괜히 엮일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의 볼멘소리를 들은 류제국은 "나도 원했던 등판은 아니다. 난들 (김)진우와 이렇게 빨리 만날 줄 알았겠느냐"고 발을 뺐다. 소문난 잔치, 선배들도 거들었다. 류제국처럼 해외파 출신인 봉중근(33·LG)은 "여유를 가져야 한다. 미국과 달리 유인구에 속지 않으니 공격적인 피칭을 하라"고 조언했다.
▶물러설 수 없는 팽팽한 대결
시종 팽팽했다. 류제국은 이날 5⅓이닝 동안 5피안타(2홈런) 4실점하며 한국 무대 첫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최고 구속은 시속 144㎞에 그쳤지만 81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를 골고루 곁들였다.
류제국은 1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첫 피안타와 실점은 2회에 나왔다. 팀이 1-2로 뒤진 2회 1사 후 최희섭에게 중전안타를 맞은 그는 이어진 2사 1루에서 홍재호에게 투런포를 허용했다. 모두 시속 140㎞대 초반의 직구였다. 팀이 7-2로 앞선 6회 1사 1루에서는 나지완에게 높은 투심을 던졌다가 중월 투런포를 맞고 류택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다른 건 몰라도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하고 싶다"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썩 나쁘지 않은 내용이었다.
위기 상황에서는 유연하게 대처했다. 류제국은 4회 1사 후 나지완의 볼넷과 최희섭의 우전안타로 1·2루 위기를 맞았다. 상대는 최근 두 경기에서 쾌조의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는 이범호였다. 그러나 류제국은 이범호에게 5구째 시속 122㎞ 몸쪽 체인지업을 던져 3루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반면 김진우는 4⅔이닝 동안 안타 9개를 맞고 7점(3자책)을 헌납했다. 올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실점이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김진우는 5회 선두타자 오지환의 기습번트에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정성훈을 2루 땅볼로 유도했지만, 병살을 노린 2루수 홍재호의 실책이 나오며 무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이어 박용택에게 우전 적시타를 허용한 그는 5회에만 대거 5실점하며 조기 강판했다.
▶만원관중, 다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다
이날 잠실구장은 경기 시작 16분 전인 오후 4시44분에 만원 관중을 이뤘다. 17일부터 주말 세 경기 연속 매진 행진이었다. 특히 이날은 왕년의 '라이벌'들의 맞대결을 보기 위한 팬들로 가득찼다. 야구장을 찾은 LG 팬 한영우(28)씨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구장에 나왔다. 류제국의 첫 경기가 있어 평소보다 더 빨리 나왔다. 모처럼 '승리의 노래'를 마음껏 불렀다"고 했다.
팀원들도 똘똘 뭉쳤다. LG의 맏형 이병규(등번호 9)는 주자가 있을 때마다 또박또박 적시타를 때렸다. 이병규는 팀이 0-0으로 맞선 1회 말 2사 1·3루에서 김진우의 2구째 바깥쪽 직구를 밀어쳐 1타점 좌전 안타로 연결했다. 1-2로 뒤진 3회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도 이병규였다. 그는 오지환의 볼넷와 박용택의 몸에 맞는 공으로 만든 2사 1·3루서 김진우의 6구째 느린 커브를 받아쳐 1타점 좌전 적시타를 만들었다. LG는 5회 박용택의 적시타를 포함해 대거 5점을 몰아내며 최근 4연패에서 탈출했다.
김재현 SBS ESPN 해설위원은 "선수들이 매 이닝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차명석 LG 투수코치는 "류제국이 기대 이상으로 잘 던졌다. 국내 첫 등판이고, 만원 관중 앞이었는데 흔들리지 않고 자기 피칭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체력 보강을 더 한다면 팀 토종 선발진의 주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