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1시간의 길고 긴 승부였다. 하루 36홀도 모자라 연장 3홀까지 39홀을 플레이한 뒤에야 끝이 났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25·KB금융그룹)가 개인 통산 세 번째이자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특히 박인비는 LPGA 투어 사상 우승 횟수로는 역대 여덟 번째로, 선수로서는 일곱 번째로 시즌 첫 번째와 두 번째 메이저 대회를 연속(백투백) 제패한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2005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이후 8년 만이다.
1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피츠퍼드 로커스트힐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최종 3~4라운드. 첫날 경기가 폭우로 순연되면서 이날 하루 동안 36홀 플레이를 펼친 박인비는 합계 5언더파를 기록해 노장 카트리오나 매튜(44·스코틀랜드)에게 연장 승부를 허용했다. 하지만 박인비의 정교한 샷과 퍼팅 능력은 매튜를 압도했다. 박인비는 18번 홀(파4·369야드)에서 치러진 연장 3차전에서 6m짜리 버디를 낚아 4온 1퍼트로 보기를 한 매튜를 꺾었다. 시즌 4승째이고 통산 7승째다. 이 가운데 지난 4월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을 포함하면 메이저 대회에서만 3승을 했다.
박인비는 "27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씨는 완전히 마라톤을 뛰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이 피곤해 샷이 중구난방이었다"며 "오늘 내가 우승한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박인비는 이날 14차례 드라이브 샷 가운데 여섯 차례만 페어웨이에 떨어졌고, 그린을 열 차례나 미스했다. 대신 퍼트수가 27개로 좋았다. 미국 골프칼럼니스트 랜돌 멜은 "누구나 질투가 날만한 마법의 퍼터를 가진 박인비에게 샷의 난조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제 박인비는 한국의 최고 수출품으로 평가받았던 박세리(36·KDB금융그룹)를 능가할 세태다. 한국선수 가운데 한 해 2차례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것은 1998년(4월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6월 US 여자 오픈) 데뷔 첫해였던 박세리가 유일하다. 이후 박세리는 올해까지 16년 동안 메이저 5승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박인비는 2007년 데뷔 이후 7년차 만에 3승을 했고 2008년 US 여자 오픈 이후 3년6개월여 만에 한해 메이저 2연승을 달성했다.
또 올해부터 에비앙 마스터스까지 메이저 대회(총 5개)로 추가되면서 우승 기회가 한 번 더 생긴 만큼 박인비는 '한국 선수 단일 시즌 최다 메이저 대회 우승' 및 '한국인 첫 커리어 그랜드 슬램' 기록까지 넘볼 수 있게 됐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한 시즌 이상에 걸쳐 5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4개의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것을 뜻한다. LPGA는 "박인비는 올해 남은 브리티시 여자 오픈(8월)과 에비앙 마스터스(9월) 중 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 슬램(종전·카리 웹·26세)을 완성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