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방송에서 1위 하고 싶습니다." 지난 6월 컴백한 남성 12인조 아이돌 엑소가 밝힌 올해 목표였다. 엑소는 이로부터 4개월 뒤인 9월, 이 목표를 너무 쉽게 뛰어넘어 버렸다. '으르렁'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 SBS '인기가요' MBC '음악중심'에서 트리플크라운(3주 연속 1위)을 달성했다. KBS 2TV '뮤직뱅크'에서도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엑소의 1위 달성은 높은 음반 판매 점수 덕분이다. 6월 발표한 정규 1집 'XOXO(Kiss&Hug)'과 8월 공개한 리패키지 앨범을 묶어 무려 73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온 음반 불황에 유래를 찾기 힘든 스코어. 같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동방신기가 2008년 4집 '미로틱'으로 46만장의 판매량을 기록, 골든디스크 음반대상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무서운 판매량이다. 엑소의 새 앨범만 나오면 소녀팬들이 꼭 닫아 두었던 지갑을 두 말 않고 열었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엑소는 데뷔 2년 만에 이처럼 강력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판타지 아이돌 엑소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판타지 아이돌…스토리텔링으로 팬덤 잡아
엑소의 73만장 판매는 기념비적이다. 70만장 돌파는 김건모 7집(139만장), 조성모 4집(96만장) 등이 발표된 2001년 이후 12년 만의 대기록이다. 막강한 소녀팬덤이라고만 설명하기에도 뭔가 부족함이 있다. SM의 기라성 같은 아이돌 선배들인 동방신기·슈퍼주니어·샤이니도 최근 발표한 앨범들이 50만장 언저리에서 그쳤을 뿐이다.
엑소의 팬덤이 빛을 발한 이유는 데뷔 초부터 고수한 스토리텔링이 먹혀든 덕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단순이 음악을 좋아하고 춤을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엑소는 태양계 외행성인 '엑소플래닛(EXOPLANET)'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름이다. 미지의 행성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12명의 멤버들은 각각 초능력을 갖고 있다. 크리스(비행), 레이(치유), 루한(염력), 시우민(빙결), 타오(타임컨트롤), 첸(번개), 찬열(불), 백현(빛), 카이(순간이동), 수호(물), 세훈(바람), 디오(힘) 등이다. 판타지 아이돌의 탄생.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곧 신화로 발전했다. 데뷔곡 '마마'의 뮤직비디오는 엑소의 탄생을 신화화한 부분이 엿보인다. '12개의 힘이 생명의 나무를 돌봤지만 붉은 기운이 침범해 나무를 둘로 나눴고 12개의 힘은 반으로 나뉘어 꼭 닮은 두 개의 태양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1집 활동에서도 '인간을 사랑하게 된 늑대'('늑대와 미녀') '그녀에게 다가서는 다른 늑대들에게 드러낸 질투심'('으르렁') 등 판타지적 스토리텔링을 이어가 큰 성공을 거뒀다. 어른들에게는 조금 유치할 수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판타지가 된다. 팬들은 엑소가 만들어준 놀이터 속에서 자유롭게 '팬질'을 시작한다. 일례로 엑소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팬과 픽션의 합성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쓰는 소설)이 셀 수 없이 쏟아지는 것을 들 수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팬픽이 아이돌 팬덤의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데, 샤이니 팬픽이 압도적이라면 인피니트와 엑소가 그 뒤를 따르는 양상이다. 특히 엑소는 최근 멤버별 팬페이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그룹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다년간 쌓은 'SM의 프로모션 노하우'
엑소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기획력의 총집합체다. 탄생 배경부터가 그렇다.
SM이 공들이는 '제1시장' 중국을 염두에 둔 치밀한 전략으로 팀을 구성했다. 6명의 한국인 멤버로 구성된 엑소K와 3인의 중국인+2명의 한국인+중국계 캐나다인 1명으로 멤버를 구성한 엑소M이 '마마'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데뷔, 한·중 시장을 동시 공략한 전략이 성공요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 음악시장의 주축인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이슈 몰이를 하며 데뷔와 동시에 아시아 시장이 주목하는 그룹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올해 시작된 '완전체 엑소' 활동은 양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두 팀이 뭉쳐 시너지를 낸 효과를 고스란히 얻었다. 한국에서의 앨범 판매량만큼, 중국 팬들의 구매 또한 그 숫자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모션도 남달랐다. 2011년 말부터 100일에 걸쳐 엑소 멤버를 한 명씩 알리는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100일 글로벌 프로젝트'로 데뷔 전부터 한국을 넘어 글로벌 팬들을 보유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SM이 국내에서 첫 시도한 '리패키지' '멤버별 앨범 구성' 등의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엑소의 경우 1집이 42만 4260장(6월 3일 출시)이나 팔렸지만 신곡 '으르렁'을 섞은 1집 리패키지 역시 31만 2899장(8월 5일 출시)의 판매고를 올렸다. 팬들이 앨범을 음악을 듣기 위해 도구가 아닌, 소장품 개념의 선물로 여긴다는 걸 의미한다. 앨범에 멤버 중 한 명의 사진과 사인이 명함크기로 든 랜덤카드를 넣고, 각종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는 것도 앨범 판매에 큰 도움이 된다.
관계자는 "랜덤카드 등의 이벤트는 SM이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국내 가요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마케팅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12멤버의 랜덤카드를 모두 모으기 위해, 수십장의 앨범을 사는 팬들이 흔한 건 아니다. 그 만큼 강력한 엑소의 팬덤을 반증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