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안양과 경찰축구단의 K리그 챌린지 경기가 열린 9일 안양종합운동장. 전반 초반 공격 중이던 홈팀 안양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은 직후 관중석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깃발을 힘차게 들어올려 오프사이드를 알린 부심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선수들에 집중하느라 심판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관중들은 이후 '여성 심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 살피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하는 남자선수들의 스피드를 똑같이 따라가 정확히 오프사이드를 잡아내는 모습에 관중석 한 켠에서 탄성과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김경민(33) 심판.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주심으로 활약한 임은주 강원 FC 사장에 이어 프로축구 무대에서 두 번째로 등장한 여성 심판이다. 부심으로는 최초다. 9일 K리그 데뷔무대를 치른 후 일간스포츠와 만난 김 심판은 "무사히 첫 경기를 마쳐 기쁘다"면서 "K리그 판정시비는 각오했다. 그저 즐기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K리그 무대를 처음 밟아본 느낌은.
"성인 남자선수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더라. 무사히 게임을 마칠 수 있어서 기뻤다."
-K리그 경기에 등장한 여자 심판에 대해 팬들이 어떤 점을 기대할 수 있을까.
"팬들의 입장에서는 '여자 심판이 과연 남자축구 경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느끼실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잘하면 심판을 꿈꾸는 여자 후배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감도 느낀다."
-K리그 심판들은 판정 시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도전이 두렵지는 않았나.
"교육을 받을 때 선배님들이 판정시비에 휘말리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시더라.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게임을 즐기자는 마음 하나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여자라서 판정 시비에 대해 좀 더 주목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점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선수와 심판 중 어떤 역할이 더 어렵나.
"선수시절이 훨씬 쉬웠던 것 같다. 선수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하고, 동료가 도와줄 수 있지만, 심판은 잠시만 집중력을 잃어도 사고가 발생한다. 내 판정 하나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늘 부담이다."
김경민 심판은 선수 출신이다. 13세부터 20세까지 여자축구선수로 뛰다 은퇴한 뒤 2000년부터 심판으로 역할을 바꿔 활동 중이다. 2004년에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해 올해로 10년 째 전 세계 축구 무대를 누비고 있다.
-어떤 심판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언제나 최선을 다 하는, 열심히 하는 심판이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심판으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여자경기에서 심판으로 그랜드슬램을 했다. 올림픽, 월드컵 등 모든 무대를 다 밟아봤다. 앤섬을 들으며 선수들과 함께 입장할 때, 전광판에 내 이름이 오른 것을 볼 때 언제나 뿌듯하고 설렌다."
김경민 심판은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을 시작으로 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2008, 2010), FIFA 20세 이하 여자월드컵(2010), 런던올림픽(2012) 등 여자축구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섭렵한 엘리트 판관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선정 여자부심상(2012), 대한축구협회 선정 여자부심상(2011) 수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임은주 심판이 현재는 K리그 클래식팀의 사장으로 활동 중인데, 심판 이후의 계획이 정해져 있나.
"당면과제는 2015년 캐나다 여자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이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지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자월드컵만 보고 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