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날이다. 아프가니스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배후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총성과 포연은 아프가니스타의 일상이 됐다. 미국에 의해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종족 간의 갈등과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다시 반군이 정부를 장악할 가능성도 크다.
9.11테러 12주년이었던 지난 11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은 모처럼 하나로 뭉쳤다. 집과 식당, 사무실은 물론, 마을 앞 공터까지 TV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상대를 겨눴던 총도 잠시 내려놓았다. 네팔 카투만두에서 열린 남아시아축구연맹(SAFF) 결승전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의 결승전 때문이다. 2년 전 결승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에 0-4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인도는 남아시아연맹에서는 10번이나 정상을 밟은 지역의 맹주다. 그러나 이날은 아프가니스탄이 경기 내내 인도를 몰아붙이며 2-0으로 승리했다.
아프가니스탄이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1922년 아프간 축구협회 설립 후 처음이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프가니스탄 전역은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AP는 ‘증오가 아닌 축제를 위한 총탄이 공기를 갈랐다’라며 ‘수도 카불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거리로 나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경기 후 약 한 시간동안 축포 소리가 이어졌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1948년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아프가니스탄은 이해 열린 런던올림픽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한 저력의 팀이다. 그러나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1970년대 구소련의 침공을 받아 국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탈레반 정권은 스포츠를 탄압했다. 경기장은 이슬람 율법을 배우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다시 축구가 시작됐다. 2003년 이 대회에서 3연패로 탈락했던 아프가니스탄은 딱 10년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젊은이들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기뻐했다.
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