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45) 포항 스틸러스 감독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19일 그가 이끄는 포항 스틸러스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결승에서 전북 현대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포항은 대회 2연패와 함께 FA컵 최다우승(통산 4회)까지 기록했다.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포항을 정상으로 올린 황선홍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 받고 있다.
지난 2008년 부산 사령탑에 데뷔한 황 감독은 우승컵과 거리가 멀었다. 한때 '스타 플레이어는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지난해 포항에서 FA컵 정상에 오르며 이런 비난을 잠재웠고, 올해 2연패에 성공하며 지도자 성공시대를 알렸다. 황 감독은 '명장'이라는 칭찬에 손사래를 치며 "아직 멀었다. 결과가 좋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실수를 할 것이다. 축구계를 떠날 때까지 항상 연구하겠다"고 했다.
포항은 올 시즌을 앞두고 모기업의 지원이 줄었다. 골키퍼 신화용(30)과 황진성(29) 등 주축 선수와의 재계약은 난항을 겪었다. 구단은 황 감독에게 '외국인 선수 영입을 포기하면 이들과 재계약하겠다'고 제안했다.
선택의 순간, 황선홍 감독은 "고참 선수의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잡은 신화용은 FA컵 결승 승부차기에서 두 차례 선방을 펼치며 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한국 선수끼리 더 단단하게 뭉칠 수 있다"던 황 감독의 믿음에 보답한 것이다.
선수를 다루는 '밀당 기술'도 늘었다. 올 시즌 내내 단단한 수비를 뽐내던 중앙수비 김광석(30)-김원일(27)이 후반기 들어 흔들렸다. 황 감독은 FA컵을 앞둔 K리그 3경기에서 젊은 중앙수비수 김준수(22)를 선발로 투입하며 김광석과 김원일을 자극했다. 그리고 결승전을 앞두고는 두 선수를 그대로 내보냈다. 다시 믿음을 준 것이다. 김광석과 김원일은 전북의 케빈을 꽁꽁 묶었다. 황 감독은 "집중력이 더 좋아졌다. 준수를 통해 자극을 줬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유망주를 선별하는 안목도 갖췄다. 부산 시절 황 감독은 박종우와 한지호, 한상운 등을 주전으로 키웠다. 그리고 포항에 와서는 지난해 신인왕 이명주를 주전으로 발탁했다. 올해는 황진성의 부상 공백을 '무명' 김승대(22)로 메웠다. 김승대는 포지션 경쟁자인 문창진, 이광훈(이상 20세)처럼 청소년 대표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황 감독은 과감히 그를 택했다. 황 감독은 "훈련 때 유심히 살핀다. 승대가 체격조건이나 활동량에서 현재 포항에 더 맞다"며 "완벽한 선수는 없다. 팀에 맞는 캐릭터를 갖춘 선수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김승대는 전북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이제 황 감독의 목표는 K리그 클래식 우승이다. 프로축구 30년 역사에서 FA컵과 정규리그를 동시에 거머쥔 팀은 없었다. 황 감독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한 번 올 것이다"며 "FA컵 우승도 정규리그 우승을 위한 발판이었다. 탄력을 받아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노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