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4년차, 출연작 542편중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만 507편, 함께 호흡을 맞춘 여배우 118명'. 모두 배우 신성일(76)을 설명하는 문장들이다. 충무로의 '레전드'라 불릴만하다. 심지어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왕성한 체력과 정신력을 자랑하며 20년만에 또 다시 주연작 '야관문:욕망의 꽃'(임경수 감독, 11월 7일 개봉)을 내놔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무려 49살이나 어린 후배 배슬기(27)와 파격적인 멜로연기를 펼쳐 눈길을 끈다. 영화는 말기암 판정을 받은 노신사가 젊고 매혹적인 간병인을 통해 숨겨뒀던 욕망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조강지처 엄앵란을 두고도 거침없이 자신의 이성관 및 여러 여인들과의 관계를 털어놓던 신성일의 평상시 모습이 과감한 이번 영화의 장면들과 오버랩되면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돌아온 명배우 신성일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남을 가지고 영화와 인생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로배우 중 지금까지 주연으로 활동하는 이는 드물다.
"최근 몇년간 영화 출연제의를 6번 정도 받았다.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있었고,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두어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야관문'의 내용에 끌렸다."
-주연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고간다는게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는지 모르겠다.
"평소 열심히 운동을 하며 체력관리를 했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너무 심하게 몰입해 자칫 죽을뻔 한 적이 있었다. 극중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다 배슬기에 의해 구조되는 장면이다. 원래는 내 목에 걸린 줄을 손으로 잡고 잠시 버티기로 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빠져든 나머지 손을 놔버린 모양이다. 실제로 목에 줄이 걸린 상태에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슬기가 와서 나를 잡고 스태프들이 달려오는 등 난리가 났다던데 난 그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자칫 하면 진짜 목숨을 잃을뻔 했다더라. 감독까지 울먹이더라. 나름 목숨걸고 찍은 영화다."
-정말 큰일날뻔 했다.
"그 뒤로 영화 관계자들과 가족들의 권유로 병원에 가서 진단까지 받았다. 자살 미수에 그쳤을 경우 자칫하면 뇌에 손상이 간다더라. 대구에 있는 주치의에게 진단을 받았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다더라.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내가 이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무려 118명의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데다 이번엔 손녀뻘 배슬기와 멜로연기를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참 복받은 사람인것 같다. 이렇게 예쁜 친구와 남녀 주인공으로 영화에 출연한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래도 워낙 많은 작품에서 여러 여배우들과 멜로연기를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리없이 잘 끝낼수 있었다. 경험을 통해 상대 여배우를 리드하는 방법, 또 긴장을 풀고 그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충분히 체득한 상태다."
-'야관문' 출연에 앞서 배슬기와의 나이차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나.
"글쎄, 슬기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별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했다. 또 캐릭터에 깊이 빠져들다보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슬기 역시 차곡차곡 영화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더라. 그만큼 내가 존중해줘야할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난 예쁜 여인들을 보면 참 사랑스럽고 좋다. 그 많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 빼어난 미모의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이번 작품 출연소식에 부인 엄앵란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대환영이지. 자기 영감이 20년만에 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한다는데 얼마나 좋겠나. 그 사람도 이미 시나리오를 다 읽어본 상태다."
-젊은 여자와의 멜로가 등장하는데도 별말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 없었다. 이미 도통한 사람이라 그런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미 내가 출연하기로 결정했는데 싫다고 한다고 말릴수가 있겠나."
-부인 외에도 여러 이성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나.
"애인이 있어야 건강하게 사는 것 아닌가. 세상에 예쁜 여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을 사랑하면 왜 안된다는건가. 피카소·앤소니 퀸 같은 사람들이 말년까지 몇 명의 애인을 만났는지, 또 얼마나 어린 애인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주변에서 내게 '애인 있냐'고 묻는데 '없다'고 하면 '거짓말 말라'고 한다. 그리고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척들을 한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사랑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거다. 난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발언이 부인 엄앵란에겐 반갑게 들리지 않을것 같다.
"우리 부인은 집안의 기둥이다. 막상 이런 내 말에 대해 우리 부인은 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주변에서 오히려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