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은 흔히 빙판 위의 체스로 불린다. 약 20㎏의 스톤을 빙판에 굴려 쉴새 없이 빗자루질을 해 표적판에서 치열한 자리 싸움을 펼친다. 언뜻 보면 '빗자루질만 하는 놀이'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빙판에서 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지는 역동적인 스포츠다.
경기도청 컬링팀 소속 김지선(26·주장)·신미성(35)·이슬비(25)·김은지(23)·엄민지(22)는 내년 2월 열릴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북중미, 유럽 등 컬링 강국들과 당당히 겨룰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 선수들이다. 지난해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4위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들은 지난 4월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 소치행 티켓까지 따냈다. 한국 여자 컬링은 국가별 올림픽 포인트 순위에서 8위를 확정지어 1998년 나가노 대회 정식 종목 채택 이후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다. 팀워크가 중시되는 컬링은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 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둔 이들은 지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버넌에서 5주째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올림픽은 꿈의 무대였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과 싸우며 어렵게 선수 생활을 이어와야 했다. 김지선은 "국제 대회를 나가면 다른 나라 선수들이 쓰다가 버린 브러시 헤드를 주워 빨아서 다시 썼다. 그만큼 장비가 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미성은 "주변에서 '브룸(빗자루 모양의 솔)'을 보면 '청소부 일을 하느냐'며 놀렸던 때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컬링을 그만 둔 선수도 있었다. 이슬비는 "돈을 벌어 대학에 가겠다"며 경북 구미로 내려가 유치원 보조교사를 했다.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김은지는 다니던 학교의 학비가 없어 선수 생활을 포기하려 했다. 국내에서 컬링 선수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김지선은 중국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해온 컬링을 마냥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경기도청 컬링팀을 이끌던 정영섭(56) 감독의 설득에 이들은 다시 스톤에 꿈을 실었다.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 등 다른 빙상 종목 선수들과 같은 빙상장에서 훈련하고, 모텔 주변에서 김밥을 먹으며 합숙하는 어려운 여건에도 수없이 스톤을 굴렸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세계선수권에서 종주국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스웨덴, 캐나다 등을 모두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4위에 올랐다.
겨울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은 뒤, 여자 컬링 대표팀의 대우는 달라졌다. 우선 국제대회 초청을 꾸준하게 받았다. 그만큼 한국 컬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대한컬링경기연맹의 지원도 많아졌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한 '평창 프로젝트'가 가동됐기 때문이다. 달라진 대우만큼 국제 대회 성적도 꾸준하게 좋았다. 지난달 열린 중국 오픈에서는 중국, 캐나다를 연달아 꺾고 우승했다. 2013 세계선수권에서 7위 안에 들었던 팀들이 모두 초청된 대회에서 거둔 성적이었다. 캐나다 전지훈련에서도 각종 대회들의 초청을 받으며 다양한 실전 감각을 쌓고 있다. 정 감독은 "작년 세계선수권 4강 덕분에 다른 나라들이 '한국 컬링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이 많아졌다. 달라진 위상만큼 개인 전력, 기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훈련을 소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올림픽을 앞둔 만큼 이들은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신미성은 지난 2월 딸을 출산한 뒤 1달만에 선수로 복귀했다. 김지선 역시 지난 5월 중국 컬링 남자대표팀의 쉬 야오밍과 결혼해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시기다. 20대 초중반의 다른 젊은 선수들 역시 또래 일반인들과 같은 삶을 포기하고 컬링을 택했다.
그래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이들은 오늘도 스톤을 굴리고 힘차게 빗자루질을 하고 있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99일 앞두고 이들이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시상대 가장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김지선은 "후회없는 경기를 하다보면 결과는 하늘이 답해줄 것이다. 그 결과가 금메달이었으면 좋겠다"면서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잠시 컬링을 포기했던 이슬비의 각오는 더 다부졌다. "주변에서 빗자루질하냐, 구슬치기하냐고 놀려댈 때 서러웠다. 그동안의 설움은 잊고, 얼음 위에서 죽어보겠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사진=왼쪽부터 김은지, 엄민지, 신미성, 김지선, 이슬비, 대한컬링경기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