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가 지상파에 범람하고 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면서 글을 쓴 작가 또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의 여주인공 전소민은 몰라도 임성한 작가는 대부분 아는 현실.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 '밥줘' 서영명 작가,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도 대중에게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이들을 엮어 일부 네티즌이 '막장계 F4'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다.
'오로라 공주'가 최근 연이은 연장 방송과 개연성 없는 출연자들의 죽음 등으로 연일 시끄럽다. 포털사이트에서는 네티즌들이 ‘즉시 종영’ 서명 운동을 벌이는데, 시청률은 20%를 향해 순항 중이다. 막장 드라마는 누가 만들고, 왜 만드는지 살펴봤다.
▶막장계 F4 누가 있나.
막장 드라마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오르면서 작가들 또한 집중 관심을 받는다. 특히 '막장계 F4'라 불리는 일부 작가들이 관심의 타겟이다.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대중의 눈총을 사지만, 편당 원고료는 ‘톱 작가’ 수준으로 대우 받는다.
막장계 대모 격은 역시 '오로라공주' 임성한 작가다. '보고또보고''인어아가씨''왕꽃선녀님''하늘이시여''아현동 마님''신기생뎐' 등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2000년대 후반 '막장 드라마'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주인공 또한 임 작가다.
내용은 말할 것 없이 파격적이다. 데뷔 초 '겹사돈' 등에서 그쳤던 것이 이젠 친딸을 며느리 삼는 상황(하늘이시여), 귀신 출연(신기생뎐), 돌연사(오로라 공주) 등 점점 기괴해지고 있다. '신기생뎐'을 거쳐 '오로라 공주'로 오면서는 엄청난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댓글의 90%가 임 작가에 대한 욕설로 시작한다. 원망과 미움이 글에 달했다.
문영남 작가 또한 '믿고 보는' 막장 작가다. 히트작의 면면이 화려하다. 데뷔 초에는 '바람은 불어도''정때문에''애정의 조건' 등 막장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을 써왔다. 시작은 '조강지처 클럽'이다. 안내상이라는 '초 밉상'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시청률 40%를 돌파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꼬리표도 이 때부터 붙었다. 이어 발표한 '수상한 삼형제' 또한 '가족의 화합'이라는 주제 의식과 거리가 먼, 가족의 불신과 파탄만 보여줘 시청자들의 분통을 터지게 했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KBS 2TV '왕가네 식구들' 또한 김해숙·오현경·오만석 등 막장 캐릭터들의 향연 속에 순풍에 돛 단 듯 인기를 끌고 있다.
서영명 작가의 명성도 자자하다. 부유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불륜과 파탄을 코믹하게 그린 '부자유친'을 비롯해 '이 남자가 사는법' '이 여자가 사는 법' 등에서 파격적인 대사와 소재로 시청자들에게 막장 진단을 받았다. 특히 부부 강간 장면, 자살 등 극단적인 설정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성한 작가와는 동시간대 자주 붙어 '막장계 라이벌'로 통한다. 최근작으로는 '밥줘''더 이상은 못 참아' 등이 있다.
김순옥 작가는 '아내의 유혹'이라는 '걸작' 한 편으로 막장계 신데렐라로 자리 잡았다. 내용은 '초 간단'하다. 남편이 친구와 바람이 나 아내를 죽인다. 아내는 구사일생, 복수를 위해 눈 밑에 점을 찍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 남편을 파멸로 몰고 간다. 정상인처럼 보이던 남편은 어느 순간 강간은 물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범죄자가 돼 있다. 그래야 쫄깃쫄깃한 복수극을 완성할 수 있다.
▶막장 드라마 왜 만드나.
막장 드라마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건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임성한 작가는 '오로라 공주'로 총 50억 가량의 원고료를 받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송사, 제작사 입장에서는 크게 아깝지 않은 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오로라공주'는 시청률 20%대에 근접하는 호성적을 거두며 120회에서 30회가 연장된데 이어, 또 다시 연장을 준비 중이다. '왕가네 식구들' 역시 17일 방송이 무려 32.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상파·케이블 전체 프로그램 1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최근의 상황을 두고 한 네티즌은 '이쯤되니 작가가 문제인지, 편성을 해주는 방송국이 문제인지, 막장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상해진 건지'라는 댓글을 달았을 정도다.
납득이 잘 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두렵다''연장을 하다니, 미친 짓이다''공영 방송에서 왜 자꾸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비판 글만 넘쳐난다. '오로라공주'의 경우 '연장 반대''즉시 종영' 서명 운동이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욕을 하는 사람도 일단, 드라마를 봤다는 거 아닌가. 또 욕을 하면서 드라마를 볼 것이다. 그만큼 막장 드라마가 갖는 흡인력을 무시 못한다"고 설명했다. 막장 드라마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유인효과는 뭐가 있을까. '조강지처클럽'을 예로 들어보자. 오현경은 남편 안내상에게 버림받으며 모진 굴욕을 당한다. 보는 사람은 분통이 터지고 화병 날 일이지만, 꾹 참고 오현경이 복수의 칼 날을 갈기만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안내상은 쪽박을 차고, 오현경은 새 남자를 만나, 새 출발하는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속시원한 대리만족이다.
관계자는 "드라마는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는다. 때로는 드라마로 우리의 현실을 공감하고, 때로는 동화 속 신데렐라 스토리로 판타지를 경험하기도 한다. '막장 드라마'도 기본은 같다. 단지 현실과 판타지를 좀 더 자극적으로 보여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막장 드라마를 보면 일정한 패턴이나 공식이 있다. 사랑과 배신, 복수에 이르기까지 단순하게 정리가 가능한데 이런 공식들이 대중에게 굉장히 친밀하다. '동의반복'이라고 무시하면서도 그 단순한 맛에 끌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