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신문을 읽는다. 요즘은 인터넷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다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종이신문을 읽는 이유는 울 아버지 때문이다. 시골에서 식당을 운영 하시던 아버지는 하루에 두 개의 신문을 읽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였다. 난 아버지가 신문을 읽으실 때는 말도 걸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나라 걱정과 세상 걱정을 끊임없이 하셨다. 충청도 하고도 보령 하고도 웅천이라는 깡 시골에서 아버지는 뭐 그리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으셨을까 궁금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러하다.
난 일간스포츠 하나와 거시기한 조간신문과 경제신문 하나를 읽고 있다. 뭐 나야 나름 핑계를 대자면 방송 진행을 하니까 여러 가지 소식을 궁금해 해서 그런다고 한다. 근데 이게 매일 꼼꼼히 읽느냐? 아니다. 이틀에 한번 나름 정독을 하려 애쓰는 것이고 나머지는 휴대전화 켜면 나오는 연합과 YTN 뉴스를 '띵동~' 소리와 함께 받는다. 그럼 그걸 읽고 나서 네티즌의 반응을 본다. 그러고 TV를 켠다. 그럼 방금 나온 뉴스에 대한 케이블 보도 채널과 종합 편성 채널의 전문가 토론 논평 듣기를 한다. 그런 방송은 대한민국에 넘치고 넘쳐난다. 각 신문사와 방송국에 담당 기자가 넘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은 교수와 직원이나 조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타이틀의 소장님들이 장악했다.
몇 개월 전 연합 뉴스Y에 정치 기자가 나와서 정치 분석을 하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은 교수에 약하다. 물론 오랜 시간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한 교수진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언론은 내부에서 책임지기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외부 인사의 이야기가 논쟁의 화두에 오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 싶다.
요즘 케이블과 종편 방송의 구성은 엇비슷하다. 의사와 연예인 몇 명을 부르고 병 고치는 약초를 파거나 암을 부르는 습관 따위를 너도나도 한다. 사실 이게 시어머니를 씹거나 며느리를 씹거나 거의 다 비슷해서 이거나 저거나 보다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나 역시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 했는데 출연자도 거기서 거기라서 내가 하는 것인지 저쪽 어디서 했던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채놀A의 박종진 앵커의 '쾌도난마' 흥행으로 다른 종편 채널의 진행자들도 거의 비슷한 진행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약간 철 없는 척 하는 반응과 난데 없는 솔까 질문으로 출연자를 흔드는 방식이다. 박종진이 도레미파솔의 파를 쓰고 있다면 다른 채널의 정치 관련 진행자는 라 이상 혹은 강호동 이상의 악을 쓰고 있다. 그게 뭔가. 신문 뜯어가며 방척객 하나 없는 곳에서 지나친 고음의 악을 쓰는 것이 열의가 있어 보이고 진행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차라리 박종진을 넘어 서려면 냉철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추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난 아버지가 읽는 신문이 뭔 내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커다란 신문을 절반으로 척척 접어가며 읽는 모습에서 멋을 느꼈다. 내가 중앙일보가 크기가 작아진 것에 아직도 불만을 느끼는 것은 집에서 아빠 자세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혹시 이걸로 제 칼럼 자르지 마세요)
종편도 이젠 일방적인 뉴스나 패널 초대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적자 해결하는 것에도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나? 또 하나 초딩 때 학급회의 시간에 배웠지 않은가. 다른 의견이 나와도 끝까지 잘 청취 하라고. 판단을 몰아가는 언론은 이제 국민들이 다 눈치 깐다. 오히려 좌나 우나 그딴 것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보도하고 논평하는 언론이 결국 지지 받는 것 아니겠는가.
종이 신문은 긴장 해야 한다. 이러다 없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기자들이 요즘만큼 특종이나 단독하기 좋은 시절이 있겠나. 안하거나 못하거나 못하게 하거나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