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24·선덜랜드)이 또 한 번 진화했다. 이번엔 '골 결정력'을 추가 장착해 위력을 더했다.
기성용은 18일(한국시간) 영국 선덜랜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첼시와의 2013-2014 캐피털원컵(리그컵) 8강전에서 1-1 동점이던 연장 후반 13분에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2-1로 승리한 선덜랜드는 4강에 올랐다.
기성용은 파비오 보리니의 패스를 받아 상대 페널티박스 왼쪽 지역을 파고든 뒤 감각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지난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입성한 기성용이 EPL에서 쏘아올린 첫 번째 득점포였다. 이 골로 선덜랜드는 15년 만에 컵대회 4강에 진출했다. 기성용은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환호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현지 언론의 반응이 뜨거웠다.
데일리메일은 기성용의 성이 '열쇠(key)'와 발음이 유사한 점을 재치있게 활용해 '키(Ki)가 무리뉴의 수비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미러는 "기성용이 무리뉴 감독의 꿈을 무산시켰다"고 썼다. 스카이스포츠는 기성용을 경기 MVP로 선정하며 '성공의 열쇠가 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기성용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환한 얼굴로 "믿을 수 없는 경기다. 내가 결승골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 어려운 경기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성용의 득점포는 한 단계 또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원래 기성용은 골 결정력을 갖춘 공격옵션이었다. FC 서울 시절 주전으로 도약한 2007시즌 이후 3년 간 8골 12도움을 기록하며 날카로운 득점 집중력을 뽐냈다. 그러나 세뇰 귀네슈 당시 서울 감독이 기성용의 패싱력과 경기 조율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츰차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었다.
기성용은 2009년 셀틱(스코틀랜드) 진출 이후 '킬 패스'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도움형 플레이메이커'의 길을 걸었다. 득점은 프리킥과 중거리 슈팅으로 한정하고 동료 선수들에게 골 찬스를 제공하는 데 전념했다. 지난해 셀틱에서 스완지시티로 이적할 무렵엔 오히려 '플레이메이커로서 스스로 만드는 득점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첼시전 득점으로 기성용은 '반쪽 플레이메이커'라는 일각의 비난도 날려버렸다. 자신의 강점인 신체 조건과 수비가담 능력, 패싱력에 득점력을 추가로 장착하며 우상인 스티븐 제라드(리버풀)와 조금 더 비슷해졌다. 6개월 뒤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있는 축구대표팀으로서도 기성용의 진화는 반가운 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