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계에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졌던 '이면계약'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베테랑 투수 이혜천(34)이 두산에서 NC로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한 사실이 밝혀져 적잖은 진통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발표는 1년, 알고 보니 4년
이혜천은 2013시즌 이후 전 소속팀 두산에 '계약 기간이 1년 남아있지만, 새로운 팀을 알아보겠으니 방출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혜천은 1998년에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해 2008시즌 이후 FA(프리에이전트) 자격으로 일본에 진출했다. 야쿠르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방출된 후 2010년 12월 친정팀 두산과 계약금 6억원, 연봉 3억5000만 원, 옵션 1억5000만 원 등 총액 11억원에 계약하고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FA 자격 취득 후 국내에서 뛸 경우 다년 계약을 허용하지만 해외에 나갔다 유턴하는 경우 다년 계약이 되지 않는 야규규약에 따라 이혜천과 두산은 1년 계약에 합의했다.
드러난 것은 여기까지였다. 실제로 두산과 이혜천은 규약을 어기고 당시 같은 조건으로 4년 장기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국내에 복귀한 이혜천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해에는 1군 단 13경기에 나서는데 그치며 승없이 1패·평균자책 11.57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던 이혜천은 두산에 방출을 요청했지만, 구단으로부터 '조금 더 생각해보자'라는 답변만 받았다.
결국 이혜천은 두산이 지난달 22일 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한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시키면서 1라운드 전체 4번째로 NC의 지명을 받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두산은 이혜천을 보내주는 대가로 NC로부터 이적료 3억원을 받았다.
쟁점은 '연봉 3억5000만원'
이혜천이 이적한 뒤 남은 계약 기간에 따른 연봉 지급과 계약금 문제 등을 놓고 두산과 선수가 치열하게 대립 중이다. 이혜천이 해외 휴가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지난 27일 두산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지만, 양측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이면계약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현재 이혜천 측은 계약 파기의 책임이 두산에 있다고 보고 남은 계약 기간의 연봉을 보존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혜천 측근은 "두산이 이혜천을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두산의 선택으로 이혜천이 팀을 옮겨간 것이기 때문에 책임은 두산 구단에 있다. 애초의 계약대로 두산은 이혜천에게 남은 연봉 3억5000만원을 주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두산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팀을 이적했으니 NC에서의 연봉 계약 상황을 보고 원만하게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두산 관계자는 "KBO 규정상 해외에서 들어오는 선수와 다년계약을 못하게 하고 있지만, 해외에 나갔다온 선수가 1년 계약을 원하지는 않는다. 선수를 붙잡기 위한 구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이라면서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말은 양측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구단에서 선수에게 주는 계약금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전달한다. 보너스를 다시 내놓으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면서 "NC와의 연봉 계약에 따라 남은 기간 연봉 지급을 고려할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