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만석(39)이 '찌질남' 연기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KBS 2TV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에서 이태란(왕호박)의 무능한 남편 허세달을 연기하며 아줌마 시청자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억척스런 와이프 이태란 덕분에 먹고 살면서 당당하게 외도까지 했다가 최근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잔뜩 기죽어 살며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있다. 정신차리 전, 극중 이름처럼 허세에 찌들어 "미추어(춰) 버리겠네"를 연발하는 그의 리얼한 연기는 시청자들의 분노지수를 극으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시청률은 40%를 훌쩍 넘어섰다. 오만석이 바람 피우다가 걸려 흠씬 두들겨 맞는 신에서는 '속이 다 시원했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오만석은 "요즘 식당에만 가면 아주머니들이 한 소리씩 한다. 호박이 좀 그만 속썩이라며 혼을 내신 분도 있다"며 "본방송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나쁜놈'이라는 욕이 튀어나오니 오죽하겠나. 요즘 허세달이 정신 차리고 살림에 집중하고 있으니 귀엽게 봐달라"며 멋쩍게 웃었다.
-'막장 캐릭터'라 몰입하는데 애먹었을 것 같다.
"몰입을 위해 연기할 땐 허세달의 말과 행동에 정당하다고 최면을 걸었다. 물론 본방송을 볼 땐 나도 모르게 '나쁜놈'이란 욕이 튀어나오더라.(웃음) 많은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 '막장 캐릭터'라 부르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 아닌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삶과 크게 동떨어진 것 같진 않다. 물론 '며느리 오디션' 등 드라마의 특수한 상황들을 빼면 말이다."
-허세달과 비슷한 면, 다른 면을 말해달라.
"돈 있으면 잘 쏜다는 것 외에는 180도 다르다. 일단 난 허세달처럼 집에서 놀고 먹는 부류가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목욕탕 보수공사·건설현장·카페 서빙·연기 학원 강사·거리 공연·가락시장 인부 등 웬만한 아르바이트는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집안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쓸 돈은 내가 버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보고싶은 뮤지컬 등을 열심히 보러다녔다."
-허세달의 행동·말투는 코믹한 부분이 많다. 애드리브인가.
"95% 대본에 의지한다. 대본이 완벽하고 지문 자체도 디테일해서 애드리브가 필요없다. 문 작가님이 쓴 대사를 잘 살리기 위해 몇 십번, 몇 백번 반복해서 입에 익힌다. 허세달의 유행어가 된 '미춰~버리겠네'도 마찬가지다. 입과 귀에 착착 감기게 말하려고 억양을 달리해 몇 백번을 말해봤는지 모른다."
-옆에서 본 문영남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 유머러스하다. 작가님의 유머 감각은 대본의 지문에서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태란이 아이들과 어머니를 위해 죽을 만드는 장면이 있으면 지문에 '인생 죽쑤고 있는 호박, 죽을 쑨다'고 쓰신다. 덕분에 배우들은 재밌게 대본을 읽고 연기할 수 있다. 대본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잘한다'를 '자아알 한다'로 표기하는 식이다. 덕분에 배우들은 대사의 느낌을 살리기 수월하다. 문 작가님의 작품은 사건의 전개와 해결 사이의 이음새가 촘촘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매주 회식을 한다고 들었다.
"금요일마다 전체 대본리딩을 한 뒤 자연스럽게 회식을 한다. 진형욱 PD님·문영남 작가님·출연진 전원이 모여 매주 금요일 2시간 동안 다음 주 세트 촬영 분량 대본 리딩을 한다. 모두 모이면 작가님이 대사의 의도 등을 설명하면서 캐릭터별 디테일을 잡아주신다. 제작진과 배우들이 드라마 방영 중 매주 대본 리딩을 하는 건 지극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뜻 아닐까."
- 데뷔 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
"한 달 이상 쉰 적이 없었다. '왕가네 식구들'이 끝나면 한 달 정도는 좀 쉬어야 겠다. 친분있는 분들이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면 웬만하면 일을 했다. 덕분에 쉴 틈 없이 연극·뮤지컬·드라마·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가진 능력 보다 잘 풀린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연극배우로 활동할 땐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그렇지 않다. 꾸준히 연기학원 강사로도 일해 벌이가 꽤 괜찮았다. 내 주변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연기의 길을 접는 경우도 있었다. 좋아하는 연기를 하겠다고 공연 외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건 '남자로서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집에 손벌리기도 싫었다. 2000년 연극 '이' 주인공을 한 뒤부터 출연료가 계속 올랐지만 아르바이트는 쉼없이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왕가네 식구들'을 보면서 어떤 얘기를 해주나.
"매주 재밌어 하면서 본다. 딸은 내가 '무사 백동수'(11) 사도세자로 나왔을 때가 제일 멋지고 좋았단다. 분위기 잡으면서 멋있게 나오니까. 가끔씩 딸이 '나가서 애쓴다'는 듯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때 기분이 묘하다. 딸은 배려심이 참 깊다. 용돈을 모아 지난 크리스마스 때 휴대폰 케이스를 선물해주더라. 그런 세심한 모습을 보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다양한 도전을 하는 배우로 보여지면 좋겠다. 도전에 인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몇 살까지 배우 활동을 할까.
"10년 단위로 끊어서 생각을 한다. 1995년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시절 연기를 못한다는 지적을 너무 많이 받았다. 그땐 '10년 뒤에도 늘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10년 뒤인 2005년 뮤지컬 '헤드윅'으로 상을 받아 '10년 더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연기자로서 수명이 10년 더 연장 될 지는 2년 뒤에 결정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