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45)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일(한국시간) 미국과의 평가전을 마지막으로 3주 간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을 마쳤다.
전훈에 참가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구슬땀을 흘렸지만, 평가전 성적표는 초라하다. 대표팀은 전훈 기간 중 3경기를 치러 1승2패, 1골 6실점을 기록했다. 게다가 이번 전훈에 참가한 선수 23명은 모두 아시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며, 이들이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갈 확률은 매우 낮다. 전훈을 마치고 나서 '1월 대표팀 해외전지훈련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전훈에 1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홍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소득을 거뒀다"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지만, 투자 대비 효율에 대해 의문 부호가 남는 것은 사실이다.
컨디션 최악의 시기
한국은 2진급이 나선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치른 1차전(1-0승)에서 17개의 슈팅을 하고도 단 한 골을 넣는데 그쳤다. 멕시코와의 2차전(0-4패)에서는 홍 감독 취임 이후 한 경기 최다 실점이자 한 경기 최다 점수 차 패배의 굴욕을 당했다. 미국과의 마지막 경기(0-2패) 또한 공·수 모두 둔탁한 움직임 속에 무득점에 그쳤다.
선수단의 컨디션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었다. 전지훈련 참가자 23명은 모두 지난해 말 시즌을 마치고 휴식 중이던 K리그(20명)·J리그(2명)·슈퍼리그(1명) 선수들이다. 한 달 가까이 휴식을 취해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A매치를 뛸 만한 체력과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전지훈련을 위해 개인적으로 식이요법·유연성·근력 강화 훈련까지 해 온 공격수 김신욱(26·울산)조차도 전훈 첫 평가전이었던 코스타리카전에서 후반 중반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공격 파트너 이근호(29·상주) 또한 "직접 뛰어보니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국내파vs유럽파 실력차 '딜레마'
이번 전훈에는 이청용(26·볼턴)·기성용(25·선덜랜드)·구자철(25·마인츠)·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손흥민(22·레버쿠젠) 등 대표팀의 주축인 유럽파 멤버들이 모두 빠졌다. 일부 전훈 참가자들은 코스타리카를 이길 때만 해도 "국내파와 해외파의 실력 차이는 없다"며 큰 소리를 쳤지만, 멕시코·미국 등 강호들과의 경기에서는 경기력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호 본지 해설위원은 "히딩크 감독은 일찌감치 본선에 나설 정예 멤버를 꾸린 뒤 강팀과의 평가전으로 조직력을 다졌다"며 "이번에는 월드컵에 갈 선수가 적어 패배가 쓴 약으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화제가 없는 전훈
거액의 비용과 귀중한 시간을 들여 진행한 훈련이었지만, 정작 축구계의 관심은 대표팀의 실세인 유럽파들을 향했다. 박지성(33·에인트호번)이 대표팀 복귀 여부로 가장 먼저 논란의 중심에 섰고, 뒤이어 박주영(29·왓포드)의 이적 여부에 여론의 눈길이 모아졌다. 같은 기간 중 기성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했고, 겨울이적시장 기간 중 팀을 옮긴 지동원(22·아우크스부르크)과 구자철이 나란히 골을 넣으며 희망을 안겼다. 전지훈련 기간 중 구슬땀을 흘린 축구대표팀 관련 화두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유럽파 선수들 위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도전하는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내파 위주의 겨울 전지훈련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면서 "관행처럼 이어져 온 기존 훈련의 틀을 바꿔야 한다.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따라 일정과 참가 인원을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