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64)이 자신의 히트곡 31곡에 대한 저작권을 27년 만에 되찾았다. 31곡에는 '단발머리''창밖의 여자''고추잠자리''여행을 떠나요' 등 최대 히트곡들이 포함돼 있다. 조용필은 배포권과 복제권을 돌려받으면서 이 곡들이 리메이크되거나 DVD로 발매될 때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가요관계자들은 지구레코드의 반환 결정에는 가요계 후배들과 네티즌의 요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지난해 조용필과 저작권 관련 문제들이 다시 화제가 되면서 포털 사이트 청원 운동까지 일 정도로 시끄러웠고 지구레코드는 결국 대승적 차원의 반환을 결정했다. 2004년 대법원에서 못을 밖은 결과가 뒤집어진 이유다.
▶조용필의 저작권 어떻게 넘어갔나
저작권 싸움의 분쟁의 1986년이다. 조용필이 지구레코드의 대표 A씨와 음반계약을 하면서 방송권과 공연권은 조용필이 갖는 대신 배포권과 복제권을 레코드사에 넘겼다. 조용필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복제 배포권·유무형 복제권 등을 단순 판권으로 잘못 이해했다.
조용필은 지난해 기자들과 만나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시대였다. 난 음악만 하는 사람이라 그런 걸 잘 모른다. 사실 지금도 어떻게 저작권이 양도된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복제 배포권과 복제권 등이 넘어가, 조용필은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발표할 때 조차 저작권을 지급해야했다. 이 권리는 2006년 A씨가 사망한 뒤 A씨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2003년에는 조용필이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18집 발매를 계획하자 지구레코드에서 ‘조용필 음악인생 35주년을 회상하며’라는 베스트앨범을 내놓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조용필 팬들은 '가짜 베스트 앨범'이라며 18집 불매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조용필은 1997년 지구레코드 측을 상대로 해당 권리에 대한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8년간의 길고 지루한 소송이 계속된 뒤 2004년 대법원까지 올라가 결국 레코드사의 승소로 끝났다. 31곡에 대한 권리는 영영 멀어지는 것 같았다.
문화 평론가 강태규 씨는 "지난해 저작권 징수액이 1200억원 정도로 규모가 커졌지만, 1986년이면 징수액이 미비했다. 가수나 제작자나 저자권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제 와서 들춰보면 이런 문제들이 비일비재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용필의 저자권 환수가 남긴 것
조용필의 저작권 문제가 가요계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른 건 지난해다. 조용필이 19집 '헬로'를 발표하면서 '바운스''헬로' 두 곡으로 가요계 정상에 다시 올랐다. 조용필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될 만큼,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가요계 후배인 록밴드 시나위 리더 신대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용필 선생님이 레코드사에 모든 저작권을 빼앗긴 슬픈 일도 있다. 당시는 아직 우리나라 저작권법이 허술할 때였고, 조용필 선배님은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이후 원저작권자가 소속사 대표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아쉬워했다. 이 글은 곧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고, 후속 기사가 이어져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등장했다. 이후에는 네티즌들이 이슈를 주도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가왕 조용필 님의 31곡 저작권 반환을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을 시작했다. 서명 인원 1만 명을 목표로 작성된 글은 불과 이틀 만에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조용필의 저작권 회수에 대한 네티즌의 높은 관심이 드러났다. 같은 해 가을 지구레코드 측은 결국 31곡에 대한 배포권과 복제권을 이전한다는 내용의 공증서류를 접수했다. 네티즌의 요구에 부담감을 느낀 결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조용필의 히트곡 '단발머리'를 검색하면 작곡 저작권자는 조용필, 양수자는 지구레코드의 전·현 대표가 기재돼 있다. 조용필의 소속사 측은 "(지구레코드 측의) 선의로 알고 있다. 이번 일이 한국 저작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는데 좋은 발단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