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시즌이 시작되기 전, 두산 김창훈(29)을 두고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다.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3경기에 나서 승패 없이 3.3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좌완 언더핸드’로 등록된 투수 김창훈은 2013시즌, 두 가지 팔 높이로 타자를 상대했다. 스리쿼터 형태로 주로 던지다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가끔씩 팔을 낮춰 언더핸드로 공을 던졌다. 그런데 이런 ‘변칙투구’에 당황한 쪽은 타자가 아닌 김창훈 본인이었다. 실전 중에 투구폼을 변화시키다보니 제구력에 난조를 보였고,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 돼버렸다.
‘트라우마’도 생겼다. 김창훈은 “‘가운데로만 던져라’, ‘가운데만 봐라’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정작 ‘가운데에 넣기가’ 힘들었다”며 “단 한 개의 공도 맘에 들게 던져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시련 많았던 프로 생활
김창훈은 2004년 ‘고교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화에 1차 지명됐다. 한화는 좌완으로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지던 김창훈에게 당시 팀 신인 최고 계약금인 4억2000만원을 안겨주며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김창훈은 프로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고교 시절 혹사의 여파로 후유증에 시달리며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다. 은퇴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07년에는 모친상을 당하며 실의에 빠졌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2009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되며 절치부심한 그가 프로야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가 바로 ‘좌완 언더핸드 변신’이었다. 아마 시절부터 사용하던 스리쿼터에 언더핸드 투구폼을 섞어 던졌다.
◇올해는 언더핸드로만
2014시즌 김창훈은 ‘전업 좌완 언더핸드’로 나선다. 김창훈은 “사실 스스로도 팔 높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늘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대만 2군 스프링캠프에 와 확신이 섰다”며 “2014년에는 언더핸드로만 승부하겠다”고 전했다.
김창훈이 확신을 갖기까지는 주변 조언의 영향이 컸다. 가득염(45) 두산 투수코치로부터는 ‘좌완 언더라는 희소성을 살리자. 언더 핸드일 때가 더 위력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김창훈의 공을 타석에서 지켜본 김동주(38)는 “지난해에 비해 공이 훨씬 좋다. 좌완 언더로 던지면 공이 ‘지저분’해서 타자가 치기 어려울테니, 자신을 믿고 던져라”라고 조언했다. 좌완 언더는 희소성으로 타자에게 어색함을 줄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모든 공이 변화구’가 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김창훈은 “언더핸드로 던지면 훨씬 더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고, 위력도 더 좋다”며 “또 임창용(38·시카고 컵스) 선배의 경우처럼 ‘직구’로 던져도 ‘뱀직구’처럼 휘어져 들어간다”고 밝혔다.
◇왼손타자 천적이 되겠다
굴곡 많은 선수생활을 보냈지만 김창훈은 ‘야구 선수같이 생기지 않았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순둥이’ 같은 외모 탓에 타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는 평을 많이 들었다. 2014년, 그는 ‘좌타자를 잡는 싸움닭’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창훈은 “송일수(64) 두산 감독님으로부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체중을 4kg 늘리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했다. 공이 묵직해졌다”며 “솔직히 남보다 ‘조금 더’ 열심히 훈련했다고 자부한다. ‘나 이만큼 노력했는데, 니들이 칠 수 있겠어?’라는 자신감으로 던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