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전을 가기 위해 KTX를 타게 됐다. 오랜만에 찾아간 서울역은 깜짝 놀랄 정도로 변해 있었다. KTX를 타기 위한 대기실에, 발권 시스템도 최첨단이었다. 표가 없어도 기차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가장 감탄한 곳은 KTX 승강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였다. "여기가 이렇게 변하다니!" 나는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차역이 된 서울역. 하지만 바로 이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과거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1960년 1월 26일 목포행 완행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민족의 명절 설날을 이틀 앞두고 서울역에는 평소보다 세 배 많은 4000여 명의 귀성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출발시간 5분 전입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동요했다. "뭐라고요? 출발 5분 전에 개찰하는 법이 어디있소!" 탑승객들은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으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넘어졌고, 계단으로 몰린 사람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사람들 위로 쓰러졌다.
엄동설한으로 계단 곳곳이 빙판으로 변해있는데다 서로 먼저 기차에 오르려고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압사사고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연약한 부녀자들이었다. 이 사고로 무려 31명이 사망하고 3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 중에는 기적적으로 살아난 어린 아이도 있었다. 엄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등뼈가 부러지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체중을 버티다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비극적인 사고의 현장에 지금은 최첨단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고 희생자 영가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복고스타일의 코트를 입은 한 여성 영가가 나를 바라보며 "고향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다음 기차는 언제 오는 지 아시나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그 여자 영가뿐만이 아니었다. 계단에도, 승강장에도 희생자 영가들은 목포행 완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시간은 2014년이 아니었다. 여전히 귀성열차를 기다리는 1960년 1월 26일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뒤 교통부는 희생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교통부 광장에서 합동 위령제를 올려주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서울에는 기차·지하철 관련해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지하철역 승강장만 해도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얼마 전에는 종로3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바람에 노인들이 많이 다쳤다고 한다.
기차·지하철은 분명 편리한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그만큼 사고도 많다. 사고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사고 이후의 충분한 보상과 위로도 있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울역 에스컬레이터 자리에 1960년에 사망한 희생자 영가들을 위한 추모 조각상 같은 공간을 조성해 영령들의 한을 달래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