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가요계 르네상스가 돌아오고 있다. 앨범 100만장을 우습게 판매하던 대형 가수들이 속속 무대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다.
신승훈·이승철·이적·김종서·임창정 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신곡을 발표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이선희·이승환·이소라 등도 의욕적으로 복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아이돌 그룹과 한류의 기세에 눌려, 숨죽이던 90년대 빅스타들이 한꺼번에 총출동하고 있다. 2014년 가요계 르네상스가 재현되고 있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90년대 스타들의 귀환
90년대 명가수들의 컴백 러시다. 지난해 이승철·신승훈·이적이 모두 오래간만에 컴백해 성공적인 앨범 활동을 펼쳤다. 올해는 그 수가 더 많아졌다. 김종서를 필두로 임창정·이승환·이소라·김건모·김동률·DJ DOC 등이 컴백했거나 준비 중이다.
이들은 90년대 앨범을 100만장 이상 혹은 가깝게 팔아치우며 전성기를 누린 스타들이다. 당시 감성이 듬뿍 담긴 발라드부터 어깨춤이 절로나오는 댄스곡까지 두루 인기를 끌며, 명곡들도 많이 탄생했다. 가요 관계자들은 당시를 '가요계 르네상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90년대 가수들의 소멸의 밤이 찾아왔다. 음반 시장의 불황, MP3의 보급, 아이돌 문화 확산, 한류 등의 주변 상황이 90년대 가수들에게는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정규 앨범으로 컴백해도 돈과 명예가 보장됐던 가수들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가요계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앨범이 나오는 기간이 차츰 길어졌고, 예전의 큰 성공 역시 담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반전의 불씨가 살아났다. 역시 시발점은 가왕 조용필이었다. 정규 19집 '헬로'를 들고나와 '바운스'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다. 후배들도 신이났다. 이승철·신승훈·이적이 곧 새 앨범을 발표해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90년대 가수들의 복귀는 더욱 활발해진다. 먼저 '라이브의 황제' 이승환이 3월 말 정규 앨범 컴백을 확정했다. 이소라도 음악적 색깔에 변화를 주고, 완성도 높은 음반으로 팬들을 찾을 예정. 임창정은 20일 5년 만에 정규 12집을 발표한다. 이미 지난해 싱글로 컴백해 차트 정상의 기쁨을 맛봤다. 이 밖에도 올 한 해 김건모·김종서·DJ DOC·김동률 등 굵직한 가수들이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
조용필·들국화·신승훈·이소라·유희열 등의 홍보·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끈 포츈엔터테인먼트 이진영 대표는 "시대가 진정성의 시대, 힐링을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자음악보다는 진정성이 담긴 리얼 사운드의 음악을 요구한다. 90년대 아티스트들이 일방이 아닌, 소통하는 음악과 목소리로 다시 대중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했다.
▶공연 바람 타고, 방송 바람 타고~
그렇다면 90년대 가수들의 봄은 얼마나 오래 갈까.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송 트렌드, 높은 음악적 퀄리티, 단독 공연의 히트 등을 이유로 꼽았다.
먼저 방송 트렌드가 90년대 가요에 꽂혔다. tvN '응답하라 1994', JTBC '히든싱어', KBS 2TV '불후의 명곡' 등은 90년대 음악을 소비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그 시대의 '향수'와 '감성'에 주목하면서 김종서·임창정·휘성 등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기도 했다.
14일 첫 방송되는 tvN ‘방송을 잘 아는 자들이 전하는 이야기-근대가요사 방자전’ 역시 8090 가요를 주제로 풀어갈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문희현 PD는 "'응답하라 1994'가 히트한 배경에는 드라마에 담긴 음악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의 음악이 가진 감성을 메인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의 음악은 한 주마다 순위가 엄청나게 바뀌고, 양도 많다. 하지만 당시의 음악들은 그렇지 않다. 추억 속 음악을 들으며 가사에 공감하고, 음악에 새겨진 메시지에서 의미를 찾아 보겠다"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밝혔다.
당시 음악의 리스너였던 대중이 현재 경제력이 높은 소비층으로 발전했다는 점도 90년대 가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90년대 당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이던 소비층은 현재 30대에서 40대 초반의 나이가 됐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여유로운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소비층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진영 대표는 "비틀즈 폴 메카트니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월드투어를 돈다. 레퍼토리가 ·다양하고, 구매력을 갖춘 소비층이 탄탄해서다. 우리도 그런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조용필·신승훈·이적 등이 공연을 매진시켰다. 가수들이 30년 넘게 롱런하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 퀄리티' 음악도 90년대 가수들이 사랑받는 이유다. 이적·김동률의 공연이 대표적이다. 콘서트만 열면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의 소속사 뮤직팜 강태규 이사는 "김동률과 이적의 음악 자체를 인정하는 팬덤이 크다. 음악성에 대한 검증이 끝난 가수들이고, 공연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 90년대 가수들이라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음악적 퀄리티를 높이면서 꾸준하게 음악을 해왔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