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겸 만화가 정석호(47) 작가가 시베리아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단행본 '백호'를 일본에서 펴냈다. 일본의 후타바샤 출판사가 연재물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한 마디도 없고, 올 컬러 수묵화인 만화를 출간해준 것은 이례적이다.
시베리아 호랑이 백호가 어미를 죽인 곰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이 만화는 전체 86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전주 한지 300여장을 동원해 제작됐다. 한지 한 장이 만화 한 컷이 됐다. 그만큼 편집이 특이할 수밖에 없다. 일본 후타바샤 출판사는 그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페이지를 매기지 않았다. 주인공 호랑이의 이름, 나레이션도, 대사도 없다. 오직 의성어만 있을 뿐이다.
한국화와 만화를 겸해온 정 작가는 지난 2009년 호랑이와 매 그림으로 개인전을 했다. 그의 그림은 방한한 우즈베키스탄·인도네시아·아랍에미레이트연합 대통령에게 국가 선물로 기증됐다.
정 작가는 "처음에는 호랑이 만화 단행본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호랑이 그림을 그리다 보니 만화로 접목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런 시도를 하게 됐다"면서 "호랑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동물 자체로 그렸다. 전세계 사람들이 언어에 상관없이 볼 수 있도록 만화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일본의 인기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에게 추천받았다. 만화 에이전트인 장종철씨는 "만화와 수묵화를 접목해 한국인이 만들 수 있는 한류의 새로운 형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스토리가 짧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래도 소장가치는 충분한 작품이다.
글·사진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1. '백호'의 한 컷인 한지 그림을 보여주는 정석호 작가. (위) 2. 일본에서 출간된 만화 단행본 '백호'.(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