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남자'논란이 가요계를 달궜다. 이름도 낯선 가수 브로의 '그런남자'가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더니 26일 오전 멜론차트 1위에까지 올랐다. 26일 오후 4시 현재 '그런남자'는 멜론차트 1위, 엠넷 2위, 소리바다 4위, 지니차트 2위를 기록 중. 장기간 음원독주를 하던 소유·정기고의 '썸'을 밀어냈고, 이선희·임창정 등 중견가수들과 경쟁 중이다.
기획사도 없는 무명신인 가수 브로(본명 박영훈·25세)의 음원차트 석권은 반란으로 불릴만큼 상반기 가요계 최대 이변으로 꼽힐만 한 사건. 이를 두고 논쟁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논쟁의 이면엔 여성비하 시각과 논란의 극우파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가 있다.
▶ 웃어넘길 수준일까.
'그런남자'가 현재 음원차트에서 두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코믹스럽게 현실을 꼬집는 적나라한 가사 덕분. 초반엔 지극히 평범한 사랑 노래 같은 발라드로 시작하다, '그런남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는 반전에서 빵 터진다. '말하지 않아도 네 맘 알아주고 달래주는 그런 남자, 너무 힘이 들어서 지칠 때 항상 네편이 되어주는 그런 남자, (중략) 그런 남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 너도 양심이 있을 것 아니냐, (중략) 왕자님을 원하신다면 사우디로 가세요, 일부다처제인 건 함정'
남자의 조건과 경제력에 몰두하고 열광하는 일명 '김치녀'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노랫말에 2030대 젊은층 남성들이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남녀의 시각차를 고스란히 담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뮤직비디오도 아이디어 상품. 유튜브에서 일주일 만에 100만 클릭을 넘어섰다.
브로의 가사에 대해 일부 남성들은 통쾌하다며 지지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여성을 비하하는 노래가 왜 음원차트 1위를 하는 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26일 오전엔 '그런남자'를 패러디한 여성그룹 벨로체의 '그런 여자'가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했다. 브로의 여성비하적 가사를 디스하며 '성형하진 않아도 볼륨감이 넘치는 너를 위한 에어백을 소유한 여자 그런 여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 너도 양심이 있을 것 아니냐, 김태희를 원하신다면 우크라이나로 가세요, 니가 멋진 차를 타고 달려도 아무리 비싼 명품으로 휘감아도 숨길 수 없는 단하나의 진실은 차는 있는데 집은 없잖아' 등으로 맞섰다. 마치 래퍼들이 디스전을 펼치듯, 여성과 남성이 편을 가르고 왜곡된 시각의 입장차를 보여주며 대치하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엇갈리는 시각, 아이디어 vs 노이즈
가요계에선 '그런남자'현상을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일부에선 '기발한 콘텐트'라고 치켜세우지만 한쪽에선 '국내 음원차트들이 얼마나 가벼운 이슈만 따라 움직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비판적인 반응을 내놓는다. 긍정적인 측면을 본 가요기획사에서는 '역시 콘텐트의 힘이 어떤 마케팅이라도 압도한다'며 기발한 아이디어에 주목한다. 지난 해 크레용팝의 '빠빠빠'반란을 분석하기에 바빴던 기존 가요 기획사들은 올 봄 브로의 반란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을 적용하고 있다. 한 대형기획사 대표는 "지난 해 크레용팝 때도 느꼈지만 콘텐트가 기발하다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 크레용팝도 소규모 기획사에서 나왔지만, 특별한 마케팅 활동없이도 기발한 안무와 뮤직비디오로 팬들을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브로의 노래 역시 콘텐트의 완성도를 떠나 새롭다는 것, 남들이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음원차트에서 인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판을 쏟아내는 측에선 극우파 사이트 일베를 이용한 노이즈마케팅이란 점을 지적한다. 노랫말 역시 일베에서 영감받은 듯하다. 그는 일베 회원임을 일찌감치 커밍아웃했고, 이전에도 이 사이트에 몇 차례 노래를 발표했다. 또 '그런남자'가 인기를 얻자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고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일베에 감사글을 남겼다. 이쯤되면 '일베'논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한 음원유통사 고위 관계자는 "음원시장에서 주요 소비자들이 10대에서 20대다. 음악을 소비하는 기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사건"이라면서 "'그런남자'의 인기를 보면 음악성이나 완성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게 우리 음악계의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디어가 좋은 건 인정하지만 모든 음악을 다 재미로만 만들 수는 없지 않겠냐. 음원차트에서 1위까지 올라가는 건 업계에서도 기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