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이는 중학교 입학 당시 키가 146cm에 불과했다. 매일 우유 1리터를 먹었고, 그라운드에서 물 대신 우유를 마셔 키가 184cm까지 자랐다."
구자철(25·마인츠)의 아버지 구광회(54) 씨가 아들을 훌륭한 축구대표팀 주장으로 키운 비결을 밝혔다. 구광회 씨는 28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한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에 강연자로 나섰다. 약 500여명의 축구선수와 학부모 앞에서 '구자철의 성장기'를 들려줬다.
구자철은 충주 중앙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구광회 씨는 "자철이는 축구를 시작하며 나와 3가지 약속을 했다. '축구화를 한 번 신었으면 죽을 때까지 벗지마라, 숙소이탈은 절대하지 마라, 학교 공부에서 반 15등 안에 들어라'였다"며 "마지막 약속만 유일하게 못 지켰지만 유럽진출을 꿈꾸며 영어 공부는 성실히 했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청주 대성중학교 입학 당시 키가 146㎝에 불과했다. 구광회 씨는 "난 어릴적 모유 대신 쌀뜨물을 먹고 커서 키가 작다. 자철이는 중학교 때부터 매일 우유 1리터를 먹었다. 몇 몇 동료들이 먹기싫어 사물함에 숨겨둔 우유까지 모아서 먹었다. 훈련 때 아이스박스에 우유를 챙겨가 목이 마르면 물 대신 우유를 마셨다"며 "죽순처럼 2cm씩 크더니 우리집안에서 유일하게 180cm이 넘었다"고 대견해했다.
구자철의 어릴적 롤모델은 박주영(29·왓포드)이었다. 구광회 씨는 "자철이는 박주영이 청소년대회 때 페널티박스 안에서 중국 선수 여러명을 제치고 골을 넣는걸 봤다. 자철이는 '주영이 형을 롤모델로 삼고 청소년대표에 발탁돼 주장을 할거다'고 말했다. 매일 전술 등이 적힌 축구일기를 쓰며 반성했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고2 때 대학교 진학이 결정됐지만 빈혈 때문에 틀어졌다. 그라운드에서 동료를 쫓아가는 게 너무 벅찼는데 알고 보니 빈혈이었고,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악바리 구자철은 철분제를 먹으면서 뛰었고, 어느 순간 동료들을 앞 질렀다. 다행히 빈혈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구광회 씨는 "2006년 제주 백록기 결승에서 자철이는 마치 이영무 씨를 보는 것 같았다. 경기장을 찾은 정해성 당시 제주 감독 눈에 띄어 이듬해 K리그 신인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했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제주 입단 후 잦은 잔부상으로 고생했다. 구광회 씨는 "자철이는 휴가 때 집에 오면 경남 함양 산속에 있는 지인을 찾아가 개인훈련을 했다. 추운데도 계곡물에서 들어가 수양을 했다. 갈 때 입은 헐렁헐렁했던 청바지가 돌아올 땐 터질듯했다"며 "젊었을 때 추억이 있어야 하니 친구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하라고 말하면 '아빠와 약속을 지켜야한다'며 절제된 생활을 했다. 몸을 생각해 탄산음료는 지금도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2010년부터 포텐셜(potential·잠재력)이 터졌다. 그 해 5골·12도움을 올리며 K리그 중위권팀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5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올라 독일 명문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구자철은 2011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돼 2시즌 연속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2012년 올림픽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도 견인했다. 2013년 볼프스부르크로 임대 복귀한 구자철은 지난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500만 유로(약 72억원)에 독일 마인츠로 이적했다.
구광회 씨는 24년간 공군 주력기 F-16 정비사로 복무하다 2002년 전역한 예비역 원사 출신이다. 말년에 눈을 다쳐 의가사 제대 후 국가유공자로 편입됐다. 구광회 씨는 "총을 해체하다 가스가 들어가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 자철이가 느슨해질 때면 '넌 내 눈을 팔아서 키웠다'고 농담을 건넨다"며 "자철이에게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바쳐야 한다. 너의 생명까지 걸려있다고 생각해라. 나도 군인 시절 국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해준다"고 말했다. 훌륭한 아들 뒤에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다.